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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나라 곳간지기의 침묵

■송종호 경제부 차장





정치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돈 주겠다” “세금 깎겠다” 경쟁하는 것을 보니 총선이 다가오긴 왔나 보다. 저출생 공약도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대학 무상 교육 등 이재명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 시리즈 확장판을 들고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지지 않고 가공식품과 식재료 등의 부가가치세를 10%에서 5%로 한시적으로 인하하자며 반격에 나섰다. 차이가 있다면 야당은 현금 살포, 여당은 세금 감면일 뿐 이쯤 되면 나랏돈을 놓고 벌이는 총선 도박판이다. 재원은 조달할 수 있는지, 세수 문제는 없는지 따지지 않고 ‘묻고 더블로 가’라는 식으로 판돈을 키우고 있다.

나라 곳간을 책임진 기획재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 한마디 말이 없다. 오히려 기재부가 자발적으로 추진 의사를 밝힌 굵직한 감세 정책만 10여 개에 달한다. 여당에 떠밀리기만 한 게 아니라 가업상속공제 확대, 세컨드홈 1주택 간주, 주주 환원 확대에 따른 법인세·배당소득세 완화 등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언급하거나 기재부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선 감면 정책이다.



정치권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선거 공약 청구서는 오롯이 기재부 앞으로 돌아올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공식 선거운동 직전까지 전국을 돌며 민생 토론회에서 약속한 대규모 지출 공약도 기재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가용할 재원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지출과 감세 규모를 키운 셈이니 기재부 예산실과 세제실 모두 속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이 밀어붙이면 정부 부처인 기재부가 어쩔 도리가 없다는 푸념은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나라 곳간지기 역할을 떠올리면 상식적이지 않다. 이명박 정권 시절 당시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재정 건전성은 재정 운영 계획의 핵심 가치”라며 집권 여당의 복지 재원 확대 요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야당을 겨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장관은 여야의 복지공약을 주인이 먹이를 주면 돼지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경쟁을 벌이는 ‘포크배럴’, 즉 돼지먹이통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 시절 홍남기 부총리도 막판에는 할 말을 했다. 비록 번번이 기재부 입장을 선회 또는 후퇴시키면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에 끌려 다녀 ‘홍백기’라는 조롱까지 받았지만 20대 대선 과정에 나온 여당발 추경을 끝까지 막았던 것은 홍 부총리였다.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못 박은 헌법 59조는 뒀다 뭐하나 싶다. 정부 동의 없이 예산 증액을 하지 못한다는 헌법 57조도 마찬가지다. 여든 야든 가리지 말고 안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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