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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최대 피해자 된 ‘프랑스 왕비’ 그녀를 위한 변명 [커튼콜 인문학]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로 보는 시민의 정의

세계 최악의 가짜뉴스 희생양 '마리 앙투아네트'



[커튼콜 인문학]은 뮤지컬과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작품의 배경지식을 스토리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주의사항: [커튼콜 인문학]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지금은 저렇게 예쁜 표정이지만… 사진제공=EMK 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10주년 그랜드 피날레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제작사는 올해 시즌인 이 버전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이라고 선언했죠. 그런데 선거철을 앞두고 유독 이 뮤지컬이 계속 정치인들 입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프랑스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탓입니다. 2016년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그랬듯, 이번 선거에서는 의도치 않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국 정치 상황을 풍자하는 작품이라는 여론이 조성된 것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현대 세계사가 인정하는 ‘사치의 대명사’입니다. 올해 내내 국내에서 조성된 여론의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어떤 여성을 비유했다는 건 그 사람이 아마 ‘사치를 많이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치가 심한 여성을 과연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해도 괜찮을까요? 이번 주 [커튼콜 인문학]은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의 넘버를 통해 과연 그가 과연 이렇게 세계인에게 미움을 받을 만큼 나쁜 여성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마리 앙투아네트는 한 적 없는 말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 여성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의 혁명 직전의 삶을 집중 조명합니다. 극 초반 시작되는 넘버 ‘그녈 봐’는 당시 프랑스인들이 이 어린 왕비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황태자를 안고 꿈에 젖은 왕비님, 헛된 꿈. 여전히 우리 눈엔 모자란 외국 여자네.
그녀는 원해 저 잘생긴 백작을 아름답고 순진해, 창피하고 더러워 <그녈봐>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많은 여성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선망합니다. 왕비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그런데 티없이 맑고 순진하기까지 하죠. 남을 괴롭히는 못된 여자였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미워했을텐데 그러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세상은 그에 대한 소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죠.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말도 안되는 소문으로 이어집니다. 왕비가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망언을 남겼다는 거죠.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요. 모든 역사학자들이 공통으로 동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뮤지컬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굶어 죽고 있는 백성들을 살펴보라며 무도회장에서 절규하는 마그리드 아르노에게 다른 귀족들이 이렇게 말하거든요.

빵이 없다면 케익을 먹어, 빵 대신 케익이 있잖아 <그녈봐>

마리는 이때 현장에 없습니다.

산 적도 없는 200억 짜리 목걸이→더는 참지 않는다고? 뭘?


더는 참지 않아!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오르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사건 ‘목걸이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어느 국가든 국가원수의 아내들이 사치를 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역사 소재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목걸이에 대한 역사의 팩트 체크도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이 목걸이는 루이16세의 할아버지인 루이 15세가 자신의 정부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것으로 당시 가격으로 한화 약 2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사치품이었습니다. 극중에서는 왕실 보석상 뵈머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팔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요. 실제 역사에서도 마리는 왕실의 재정난 때문에 이 목걸이를 사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졌고 실제로 마리가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백성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왕실과 법원이 모두 한통속’이라고 생각할 뿐이었죠. 그렇게 잘못된 소문이 퍼져나갔고 백성들의 왕비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치솟기 시작합니다. 뮤지컬 1막의 하이라이트 넘버인

‘더는 참지 않아’에 백성들의 분노가 잘 드러나는데요. 한 번 볼까요.

저 여잔 우리 왕비 아냐 우리를 장난감처럼 다루고 싫증나면 잔인하게 버리지 더 봐줄 순 없어 끝을 내야 해

더는 참지 않아 이젠 보여줘야 해 더 강한 힘을 우리 모두의 힘을

더는 울지 않아 함께 일어나 싸워야 해 시간이 왔어 일어나 싸워야 할 때야 <더는 참지 않아>

외국에서 온 왕비, 잘못된 분노의방향 →증오 가득한 눈


분노는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힘입니다. 하지만 목적 없이 들끓기만 하는 분노는 사회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특히 거짓으로 만들어진 분노는 더욱 그랬죠. 마그리드와 평민들의 분노는 가난이었고, 분노의 목적은 가난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노는 무능력한 왕 루이 16세에게 향했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뜬금없이 ‘외국에서 온 어린 왕비’에게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물정을 몰랐던 아름다운 왕비는 말을 만들어내기 무척 쉬웠거든요. 뮤지컬 속에서 마리와 마그리드가 함께 부르는 넘버 ‘증오가득한 눈’에는 오히려 마그리드의 분노보다 시민들의 분노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리의 담담함이 더 드러납니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네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냐. 보이지 않는 진실, 보일 수 없는 진실

마그리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리를 가르치려 하지만 사실 마리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위대한 혁명을 이끄는 지도자라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게 이 가사의 가르침입니다.

가짜뉴스에 현혹되는 우리들, 과연 민주주의가 원하는 정의일까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실 그녀를 위한 찬가 같습니다. 모든 장면마다 그녀를 둘러싼 역사의 모든 오해를 풀기 위한 장치가 들어가 있죠.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프랑스혁명의 승자는 ‘시민’이었죠. 축배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 이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앙투아네트의 명예 따윈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마리와 대척점에 서 있던 마그리드는 좀 달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죠. 특히 뮤지컬 2막 중간 즈음 마리가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 마그리드의 그러한 번뇌가 절정에 이르기 시작합니다. 혁명군은 마리에게 ‘자신의 아들과 근친을 했다’고 말하는데요. 마리 뿐 아니라 마그리드도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하죠. 하지만 혁명군은 두 여성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혁명을 부추긴 오를레앙 공작은 과연 이게 정의로운 일인가, 주저하는 시민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양심 따윈 버려, 그건 패배자의 것. 난 승리를 원하지 그게 바로 나, 난 최고니까 <난 최고니까>

이 가사는 정의가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를레앙 공은 시민군들을 혁명으로 이끌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들의 리더가 되고 싶은 야망을 갖고 있었죠. 그리고 그 야망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스스로를 세뇌합니다. (그렇다면 그 타겟은 루이 16세가 되었어야 했는데, 왜 마리에게.. ㅠㅠ) 그리고 실제로 역사 속에서도 오를레앙 공작은 혁명가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한 왕족입니다. 그는 루이16세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왕위에 오르는 방계 혈족이었는데요. 혁명에 승리한 후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다 역시 단두대 입장권을 끊게 됩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한 위대한 인류의 업적입니다.그것을 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

그렇게 마리앙투아네트는 무능한 남편,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가짜뉴스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모든 시민들이 항상 진실만을 고민하고, 진실에 기반한 대화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사실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 대상이 정치인이든, 정치인의 아내이든, 혹은 연예인이든…소문은 대상을 파멸로 이끌 수 있으니까요. 소문이 사실인지, 그리고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소문을 내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 옳은 일일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게 바로 프랑스 혁명을 꿈꾼 시민들이 바란 진정한 시민 사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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