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의제를 놓고 입장 차를 보이며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윤·이 회담’을 위한 2차 실무 협의가 열린 25일 민주당의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언론 탄압과 방송 장악에 대한 대통령의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전 국민 1인당 25만 원씩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각종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한 윤 대통령의 사과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 수용 등 3대 요구안 외에 추가 ‘청구서’를 계속 내밀면서 윤·이 회담이 헛돌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결정할 수 없는 부분까지 야당이 의제로 요구하는 게 있다”고 말했다.
윤·이 회담이 혹여 지연되거나 무산된다면 과도한 요구를 자제하지 않은 거대 야당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친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민주당이 윤 대통령 사과와 같은 조건을 내건다면 회담 자체가 무산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야당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방송 3법’과 ‘제2양곡법’ 처리 등 도를 넘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윤·이 회담은 4·10 총선 민의에 따라 민생을 위해 협치를 시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조건 없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국정 전반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고 접점을 찾은 뒤 경제·민생 살리기를 실행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대표가 그동안 8차례나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청하며 ‘민생 문제 해결’을 강조했던 게 진심이라면 이번 만남도 정치적 사과나 과도한 선심 정책 요구 등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도 “이 대표 이야기를 좀 많이 들어보려고 초청했다”고 스스로 밝힌 만큼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야당의 여러 주장들을 겸허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번 윤·이 회담은 반도체 지원과 취약 계층 지원 등 경제·민생 현안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협치의 불씨를 살려낼 수 있는 기회다. 야당은 총선 압승에 도취된 과욕을 버리고 윤 대통령은 환골탈태의 의지를 갖고 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