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참패로 혼란에 빠진 국민의힘을 수습할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당 원로인 황우여 상임고문이 지명됐다. 총선 패배 이후 19일 만이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사퇴한 지 18일 만이다. 황 지명자는 6~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관리형 비대위’를 이끌며 지도부 공백으로 뒤숭숭한 당을 수습하는 동시에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경선 규칙을 정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신임 비대위원장 인선을 놓고 ‘무난한 인사’와 ‘쇄신 포기’라는 당 안팎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황 지명자가 노련한 리더십으로 위기에 빠진 집권 여당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윤재옥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당선인 총회에서 황 상임고문을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했다. 당선인들 사이에서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표 대행은 인선 배경에 대해 “공정하게 전당대회를 관리할 사람, 당과 정치를 잘 아는 사람, 당 대표로서 덕망과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등 세 가지 기준으로 후보를 물색했다”면서 “황 상임고문은 5선 의원으로 당 대표를 지내고 덕망과 인품을 갖춰 공정하게 전당대회를 관리할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15~19대 국회에서 내리 5선을 한 황 지명자는 박근혜 정부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낸 보수정당의 대표 원로로 꼽힌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당수(가라테)가 8단’이라는 뜻의 ‘어당팔’이라는 별명처럼 능수능란한 정치력을 자랑한다. 판사 출신으로 온화한 성품인 데다 특정 계파에 치우치지 않아 원내대표 시절에는 야당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계 은퇴 후 로펌 대표를 지내면서도 주변에 “당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어떤 역할이라도 맡겠다”고 할 정도로 당에 대한 애정이 깊다.
국민의힘이 구인난 속에 어렵사리 총선 참패 위기를 수습할 첫발을 뗐지만 황 지명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찮다. 먼저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룰 개정’ 논의를 불협화음 없이 매듭지어야 한다. 당내 주류인 친윤(친윤석열계)·영남 의원들은 현행 ‘당원 투표 100%’인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수도권 의원과 낙선인들 사이에서는 민심 반영을 위해 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30~50%로 늘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공정한 비대위원 임명도 숙제다. 당장 다음 달 3일 선출되는 신임 원내대표로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 대세론이 확산하면서 또 다른 당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도 황 지명자의 1차 시험대다.
당내에서는 황 지명자에 대해 무난한 인사라는 긍정적 반응이 주를 이뤘다. 차기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무난한 인선”이라고 평가했고 나경원 전 의원도 “중립적인 데다 정치 경험도 많아 당을 잘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혁신형 비대위’를 주장해온 윤상현 의원은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받들고 어떤 혁신의 그림을 그려나갈지 잘 모르겠다”며 “관리형 비대위 자체가 무난하게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은 국민이 명령한 변화와 혁신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민의힘이 총선 패배 뒤에 도대체 무엇을 깨닫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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