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품이 임의로 수정돼 정치적 용도로 사용됐다는 점에 일반적인 저작권 침해 이상의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지난달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전국 곳곳에 붙여진 더불어민주당의 사전투표 홍보 포스터에서 익숙한 그림이 발견됐다. 돼지·상어 등 동물 캐릭터가 그려진 포스터에는 ‘사전투표해도 돼지?’ ‘먼저 투표해서 저는 죠습니다’는 문구가 함께 실려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동물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통해 카카오톡 이모티콘까지 출시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일러스트였기에 유권자들은 포스터를 촬영하는 등 반가움을 보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거대 야당이 4년 전부터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해당 캐릭터를 정치 홍보물에 무단 사용했을 것이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일러스트를 제작한 작가는 뒤늦게 자신의 저작물이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고 대응에 나섰다. 그제서야 민주당 측은 “오픈소스로 저작권이 풀린 줄 알았다”고 해명하며 작가와 합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온라인상에 퍼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 작가의 작품은 회수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작권법 제 1조에는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수많은 작가·프리랜서들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존중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 따르면 2022년 저작권 시정 권고 건수는 67만 5910건으로 2021년(66만 4400건)보다 1만 1500여 건 증가했다. 2013년(17만 867건)과 비교하면 무려 295.5% 증가한 수준이다.
7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는 “반드시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화 예술 분야는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민생의 한 부분이다. 거대 야당이 민생을 책임지겠다고 밝힌 만큼 저작권과 관련해 정확한 조사 없이 한 작가를 상대로 벌인 촌극을 잊지 말고 모범을 보여야 할 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