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는 말이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된 요즘, 살아온 시간 이상을 더 살아가야 할 지금의 4050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노후 자금 축적을 꼽지만 ‘무형 자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는 최근 김종선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조정본부장을 만나 중장년의 풍요로운 여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들어봤다. 30년 가까이 평생교육 분야에 종사해 온 김 본부장은 “고용 환경이 급변하고 장수 사회가 다가올수록 자신에게 재교육과 재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긴 인생을 잘 준비하려는 중장년일수록 자신을 탐색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최근 중장년의 특징은?
“오늘날 4050세대의 상당수는 1990년대 ‘X세대’로 불렸던 이들이다. 높은 학력과 역량, 풍부한 경험을 갖췄고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는 인식도 강하다. 이들의 기대수명은 120세에 이른다.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면서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게 가능한 셈이다. 반면 퇴직 연령은 49.4세(2023년 기준)로 과거보다 앞당겨졌다.”
- ‘퇴직 후 은퇴’가 당연했던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겠다.
“예전에는 입사 후 정년까지 한 직장을 다니고 은퇴해 여가를 즐겼지만, 지금은 인생 주기 전반에 걸쳐 수시로 이직하거나 창업하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까지 겪어야만 한다. 이를 두고 일본의 연구가 후지하라 가즈히로는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는 인생’이라 했다. 진학이나 취업, 육아, 퇴직 등을 겪으며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 놓이는 시기를 생애전환기라 하는데 4050세대는 현재 가장 큰 생애전환기에 놓였거나 앞뒀다고도 볼 수 있다.”
- 중장년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4050세대들은 역할이 많다. 직장에서는 허리이거나 머리이고, 집에서는 남편 또는 아내, 부모, 자녀로서 많은 역할을 요구받는다. 당장 들어가는 돈도 많은데 노후를 생각하면 부족한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고민의 상당 부분은 어떤 일을 하느냐 혹은 어떻게 돈을 버느냐에 쏠릴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긴 인생을 준비하려면 나 자신을 탐색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점검해야 할 시기다. 어디로 이직하느냐의 고민을 넘어 앞으로 5년 혹은 10년 뒤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설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점검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신체 건강을 챙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자. 만 40세가 되면 국가에서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안내장을 받는다. 몸의 변화를 검진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할 때라는 의미다. 노년기에는 늦으니까. 여생을 설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에는 늦다. 그 전에 미리 다양한 탐색과 시도를 해보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실천도 해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 은퇴 후에는 왜 늦나.
“일상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가를 결정한다. 직장을 열심히 다녔던 분들이 퇴직하면 하루 8~10시간가량이 텅 빈다. 물론 그 시간에 등산도 하고, 친구들과 골프도 치며 보내며 즐겁게 보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즐기지 못하는 분들이 태반이다.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건 삶의 풍요로움을 잃는 거다. 은퇴 후에 ‘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너희가 나를 위해 살아’라고 자녀나 배우자에게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지도 않지만, 그 일상을 풍요롭게 살기 위해 미리 스스로 삶을 점검하고 여생을 위한 설계도를 작성해 보자는 것이다.”
- 점검은 어디서 해볼 수 있나.
“평생교육기관들이 그런 일을 한다. 제가 몸담은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은 생애전환기에 놓인 4050세대를 위해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지원 체제를 개발했는데, 그것이 ‘인생디자인학교’ 모델이다.”
- 인생디자인학교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비행기는 목적지를 선택하면 그곳까지 가기 위한 항로가 설정된다. 도중에 기상 악화 등으로 경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지만 결국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나. 중장년도 살아온 시간만큼을 더 살아야 하는데, 상당수는 뚜렷한 목적지나 경로를 갖고 있지 않다. 항로 설정을 하지 않았는데 과연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중장년들이 자신을 탐색하고 기초 체력을 길러 향후 비전을 그려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 무엇인지 체크해본 뒤 실전에 앞서 실험을 해보는 전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이것이 바로 인생디자인학교다.”
- 세부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우선 ‘라이프스킬 살롱’을 통해 생애전환기에 필요한 기초체력(일·미래기술·관계·건강·취향)을 길러본다. 갤럽이 개발한 강점 진단 테스트로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찾아보거나 사진 카드를 활용해 개인의 성장과 자기 계발을 돕는 프로그램도 이 과정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어 ‘서울시민 비전하우스’를 통해 자신의 인생 목적지와 경로를 설계한 뒤 ‘프로젝트 실험실’을 통해 인생에서 꼭 도전해 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실행해 본다.”
- 또래 커뮤니티 형성도 지원한다고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활동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사회적 관계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거나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게다가 가족 외에 회사 직원 말곤 나와 친한 사람이 아예 없는 이들이 꽤 많다. 관계를 맺어보려고 해도 선뜻 모임에 나가기란 쉽지 않다. 40대나 50대에 관계를 넓히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의 배우자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평생교육기관은 같은 것을 배우는 이들이 모였다는 점, 또래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하다.”
- 작년에 시범운영을 했는데, 사례와 성과를 소개해 달라.
“커리큘럼과 운영체제 검증을 위해 지난해 약 한 달간 시범운영을 했다. 특히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생애전환기 중장년들이 프로젝트 실험실에 참가해 의미 있는 결실을 끌어냈다. 수강생 김희정씨는 ‘생전 유품 정리 워크숍’을 개발했다. 평소 집을 청소하며 평안을 찾던 본인의 관심사를 유품과 공간 정리라는 업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승은씨는 자녀들을 집에서 가르쳐 대학에 보낸 경험을 살려 노션 툴을 활용해 역사 공부를 해보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 인생디자인학교에 참가하려면.
“40~64세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오는 13일 오후 4시까지 지원을 받는다. 서울시평생학습포털의 공지사항에서 자세한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상·하반기 각각 150명 안팎의 학생을 모집하며 수업은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서 진행한다. 중장년들의 여건을 반영해 평일 야간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수업을 마련했다. 입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10일과 11일, 13일에 열리는 명사 특강을 먼저 들어보는 것도 권한다.”
- 참가를 고민하시는 분들께 한 말씀.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시민들을 위한 것들이다. 참가하신 시민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개설해줘 정말 고맙다’, ‘프로그램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 같은 피드백을 주실 때면 직원들이 매우 보람을 느낀다. 이번 인생디자인학교도 시민들을 위해 준비했다. 가전제품을 사면 사용설명서가 있지만 인생은 인생설명서가 없지 않나. 인생디자인학교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하면서 설명서를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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