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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기업의 ‘야성적 충동’ 되살리려면

불황·규제에 역동적 K기업가정신 위축

위험 무릅쓴 도전·혁신보다 안정 추구

첨단산업 경쟁력 약화 등 위기에 직면

상속세·중대법 손질 ‘기업 야성’ 깨워야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는 예비 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을 교육하는 ‘K-기업가정신센터’가 있다. 진주시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2022년 3월 삼성·LG·GS 등 우리나라 대표 기업 1세대 창업주를 배출한 옛 지수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이 센터를 설립했다. 지수초등학교가 위치한 지수면 승산마을은 이병철(삼성), 구인회(LG), 허만정(GS) 등 국내 굴지 기업을 일으킨 창업주들이 나고 자랐던 곳이다. 1980년대 초반 당시 100대 기업 회장 중 30명이 이곳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의 산실’로 불렸다.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과 미국 학계 및 경제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 K-기업가정신학회(ISKE)’ 창립 행사 겸 ‘글로벌 K-기업가정신 포럼’이 열렸다. 오준 전 유엔 대사는 기조 발제에서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강한 사회적 책임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며 “기업가정신 강화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전 대사의 말처럼 국내 1세대 창업주들은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업보국’을 경영 이념으로 삼았다. 이 일념으로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을 키워내는 데 기여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올해 1월 한 포럼에서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기업가정신을 꼽았다. 최 경제부총리는 “1992년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이 의류에서 반도체로 바뀌었는데 이는 기업이 정보기술(IT)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며 “제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 과정에서 시대 흐름을 포착한 기업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을 ‘새로운 사업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어려운 환경을 헤치며 기업을 키우려는 뚜렷한 의지’라고 정의했다. 미국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도 ‘위험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며, 기업가정신만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K기업가정신이 시들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창업 세대의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등의 우려들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경제 불황이 지속되면서 기업가들 사이에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하는 것은 기업가정신의 위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따르면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6대 첨단산업(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미래 자동차, 바이오, 로봇)의 한국 점유율이 2018년 8.4%에서 2022년에는 6.5%로 뚝 떨어졌다. 올해 초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이 공개한 ‘글로벌 핵심 기술 경쟁 현황’에서도 한국은 미래 핵심 기술 64개 가운데 단 한 분야에서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 환경 급변으로 한국 경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저성장의 늪으로 빠지느냐, 아니면 재도약의 기회를 잡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은 탄소 중립, 경제안보 등 글로벌 어젠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존과 국가 경쟁력이 결정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은 본연의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해 다시 뛰고 정부는 기업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무거운 세 부담, 과도한 형벌 등 기업가의 사기를 꺾는 걸림돌들이 여전히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대표적이다. 경총이 연 매출액 20억 원 이상의 30~40대 벤처·스타트업 창업자 1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속세제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93.6%가 ‘높은 상속세가 기업 하려는 의지와 도전 정신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가 다시 비상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인을 좌절시키는 법·제도를 신속히 손질해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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