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영국의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부커상 시상식. 각 국에서 온 수상 후보들 만큼이나 눈길을 끈 것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였다. 시상식 연단을 비롯해 곳곳에 보이는 ‘발렌티노’의 로고가 부커상의 로고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털(VC) 세콰이어 캐피털의 창립자 마이클 모리츠의 스폰서십을 5년간 유지한 뒤 부커상의 메인 스폰서로 명품 브랜드인 발렌티노가 참여한 것이었다.
발렌티노는 한야 야나기하라, 엘리프 샤팍 등 부커상 수상 소설가들과 협업을 한 적은 있지만 부커상의 공식 후원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판업계에서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후원사로 참여한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며 “시대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높으면서도 동시에 세련된 이미지에 집중하는 명품 브랜드가 책이라는 매체를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발렌티노는 세계 주요 독립서점 열 곳을 선정해 서점에 발렌티노 신상품 등을 배치해 이들 서점을 함께 소개하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독립 책방인 데 페어 북스에서는 책방 주인이자 인플루언서인 애디슨 리칠 리가 발렌티노 가방들을 배치한 가운데 서점을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서울 마포구의 독립 서점인 책발전소의 김소영 대표가 발렌티노 가방과 함께 등장하기도 해 이목을 끌었다.
LVMH의 대표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올 역시 최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토트북클럽’이라는 코너로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수납력이 좋아 ‘북 토트 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제품을 든 채 유명 배우들이 직접 책을 골라 추천하는 방식이다. 최근 업로드 된 영상에는 할리우드 배우 나탈리 포트먼이 프랑스 파리의 도서관에서 책을 추천해 화제가 됐다.
젊은 층 사이에 ‘독서=힙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만큼 명품 브랜드들도 이를 적극 활용해 책이라는 매개를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이벤트 플랫폼 이벤트브라이브에 따르면 지난 해 열린 북클럽 이벤트는 전년 대비 24% 가량 늘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차별화된 오프라인 모임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생긴 책 모임으로 몰리는 한편 젊은 층이 책 읽기를 ‘힙한 취미’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기업 사이에서 ‘메세나(기업의 예술 후원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던 책 관련 사업들이 함께 ‘윈윈’하는 구도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롯데장학재단은 문학에 대한 애호가 뚜렷했던 고(故) 신격호 창업자의 뜻을 기려 ‘신격호 샤롯데 문학상’을 출범해 시, 소설, 산문 분야에서 기성·신인 작가들이 응모할 수 있게 했다. 신 창업자의 장손녀인 장혜선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롯데문화출판대상을 없애고 작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신격호 문학상으로 재출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신세계에서는 올해 11회째 진행하고 있는 지식향연 프로그램을 5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진행해 다양한 대학생 인문학 인재들을 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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