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미국 하원 농업위원회는 새 농업법안을 승인했다. 하원 전체 회의 승인, 상원 법안과 조정·합의 과정이 남아 최종 입법까지는 아직 멀다. 그런데 처음 드러난 하원 법안이 눈길을 끈다. 이름 때문이다. ‘2024년 농업·식품·국가안보법’이라 불렀다.
미국은 약 5년마다 새 농업법을 낸다. 첫 법인 ‘1933년 농업조정법’부터 지금 19번째 법을 만든다. 그때마다 연도와 함께 붙는 법 이름은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국가안보’가 농업법 이름에 붙은 것은 처음이다. 세계 농업 상황 인식을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 최대 농업 생산·공급 능력을 갖춘 미국이라서 더욱 그렇다.
5월 29일 일본은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을 제정 25년 만에 처음 개정했다. 식량안보가 법 개정의 큰 이유다. 국내 생산 확대에 초점을 두고 거기에 수입국 다양화, 식량 비축 등을 규정했다. 일본은 자국의 큰 곡물 수입시장에서 외국 기업에 공급을 내맡기는 것을 꺼렸다. 일본 곡물 실수요 기업이 직접 수입하는 것을 바랐다. 곡물 최대 실수요 주체는 전국에 사료 공장을 가진 일본 농협이다. 큰 자기 실수요를 바탕으로 일본 농협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 곡물 거래 역량을 키웠고 이제 글로벌 곡물 기업이 됐다. 이런 기업을 가진 데 더해 법 개정으로 국내 생산 확대까지 강조한다. 그야말로 안과 밖을 모두 동원한 식량안보 다지기이다.
6월 1일 중국은 지난해 말 공포한 ‘식량안전보장법’을 발효했다. 중국 최초 식량안보 기본법이다. 식량의 생산·비축·유통·가공·비상 대응 등 식량 공급 전 과정을 규정했다. 중국도 14억 인구의 세계 최대 곡물 수입 시장을 외국 기업에 맡기는 것을 꺼렸다. 일본보다 뒤늦은 2014년 국영기업 코프코(COFCO)가 나섰다. 좋은 국제 곡물 기업을 사들여 키우는 전략을 폈다. 역시 큰 실수요를 바탕으로 코프코는 곧 글로벌 곡물 기업이 됐다. 이에 더해 법 제정으로 국내 생산 확대까지 강조한다. 그냥 일본 판박이이다.
한국도 거대 곡물 수입국이다. 그런데 뭔가 안일하다. 변변한 국제 조달 능력을 갖춘 곡물 기업 하나 없다. 큰 수입 시장을 통째로 외국 기업에 맡기면서 국내 자원 보존·활용도 느슨하다. 대표적 예가 애써 늘린 간척지를 비농업 목적으로 쉽게 돌리면서 남은 간척 농지마저 거의 묵힌다. 비슷한 상황의 일본·중국 대응을 보면 한국의 안일은 더 커 보인다.
팬데믹, 기상이변, 전쟁 등을 지나며 너무 쉽게 세계 공급망이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주요 국가들이 법률을 만들면서까지 식량·국가안보를 경각한다. 어쩌면 농업은 국방 산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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