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도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 대법원이 19일 최종적으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했다. 이에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전날 집단휴진 과정에서 개원의들에게 휴진을 강요했다는 의혹과 관련 전격적으로 현장 조사를 받았다. 의협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라며 즉각 반발했다. 의협은 20일 대정부 투쟁의 구심이 될 범의료계대책위원회를 띄운다는 계획이지만 공동위원장을 제안받은 전공의 대표가 참여를 거부하며 출범 전부터 분열을 노출했다. 의협이 여러모로 사면초가에 빠진 격이다.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이날 의대생과 전공의, 의대 교수 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000명 증원 처분 취소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재항고를 각하 및 기각했다. 재판부는 1·2심과 같이 의대생만 신청인 적격성을 인정했으며 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에 대해서는 적격성이 없다 보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증원으로 의대 재학생들이 입을 수 있는 손해에 비해 증원 집행이 정지돼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크므로 집행정지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내년 늘어나는 의대정원은 한 학년에 불과한 반면 의료인 양성에 필요한 교육은 입학 후 1~2년 후에야 시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대생들이 받을 교육의 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집행정지될 경우 국민 보건에 핵심 역할을 할 의대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으며 대입 수험생과 교육현장에도 상당한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공정위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 조사관들을 보내 전일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17일 보건복지부가 의협을 의사 회원들의 진료 거부를 독려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신고한 지 이틀 만이다.
공정위가 살펴보는 부분은 의협의 전일 집단 휴진과 총궐기대회가 회원인 사업자들의 진료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이 경우 사업자단체는 10억 원 이내의 과징금, 의협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휴진 신고율에 비해 예상보다 실제 휴진 참가율이 높았던 점을 주목했다”고 전했다.
의협은 입장문을 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한 의료계의 자율적이고 정당한 의사 표현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조치”라고 강력 반발했다. 또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신성한 투쟁 행위를 의협의 불법 진료 거부 독려로 보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수만 의사들의 자발적인 저항 의지를 모욕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전일 총궐기대회에서 정부가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27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이들은 이날 의료계와 과학적 수급 기구를 통한 의대 정원 증원 재논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항 의료계와 별도 논의, 전공의·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과 처분 즉각 소급 취소를 재차 요구했다. 이달 20일에는 향후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의사들의 구심점이 될 범대위를 출범한다.
하지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범대위 참여를 거부하며 출범도 하기 전부터 삐걱대는 모습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의협이 자신을 범대위 공동위원장으로 고려한다는 데 대해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이 발표한 요구안은 대전협 7대 요구에서 명백히 후퇴한 안이며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협 요구가 대전협이 2월 제시했던 필 수의료 정책 패키지 및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전면 백지화보다 수위가 낮다는 이유다.
박 비대위원장은 특히 임현택 의협 회장을 향해 “여러모로 유감”이라며 “언론 등 대외적 입장 표명을 좀 더 신중하게 하기 바란다”고 공개 저격했다. 의협의 무기한 휴진을 두고도 “대의원회, 시도의사회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의 ‘무기한 집단 휴진’ 선언을 두고는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당혹감이 감지된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입장문을 내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 회장들도 임 회장이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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