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페어웨이가 질퍽해 볼에 진흙이 묻을 수 있다. 카트도로나 바위에 여러 차례 부딪힌 볼에는 흠집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상태의 볼을 그대로 플레이하면 어떻게 될까. ‘호기심 해결소’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고온에 비가 잦은 여름에는 아무래도 잔디가 상해 페어웨이에도 맨땅이 드러난 곳이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볼에 진흙이 묻으면 벌타 없이 닦고 리플레이스를 한 뒤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프리퍼드 라이를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로컬 룰은 어디까지나 페어웨이서만 적용된다. 페어웨이를 벗어난 지역에서 진흙이 묻은 볼을 있는 그대로 치면 어떻게 될까. 진흙과 흠집은 볼 비행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우리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경기 평택의 볼빅 테스트필드로 달려갔다. 진흙을 실제로 볼에 묻히고 실험을 하긴 곤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찰흙놀이를 할 때 사용하는 지점토를 볼에 붙이기로 했다. 테스트 클럽은 7번 아이언으로 했고, 스윙 스피드 시속 74마일로 때렸다. 진흙의 위치에 따라 볼 비행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흙(점토)이 묻은 방향을 좌우로 바꿔가며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점토가 없는 상태에서 때렸다. 그런 후 볼의 진행방향 오른쪽에 점토를 붙인 뒤 샷을 날렸다. 볼이 약간 왼쪽으로 휘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볼 왼쪽에 점토를 붙였다. 데이터로는 볼이 살짝 오른쪽 방향으로 날아간 것으로 나왔지만 눈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볼빅의 최민철 연구원(차장)은 “클럽이 볼을 때리는 순간 점토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점토가 볼 비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흙이 미치는 영향…“생각만큼 크진 않아”
진흙의 효과를 더욱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점토의 양을 극단적으로 늘려보기로 했다. 아예 한쪽 면 전체에 점토를 붙인 것이다. 먼저 볼 오른쪽 전체에 점토를 꾹꾹 눌러 붙인 뒤 때리자 육안으로 구분할 정도로 볼이 왼쪽으로 휘었다. 세 차례의 샷이 중앙에서 왼쪽으로 벗어난 거리는 평균 10.7m나 됐다. 이번에는 반대로 볼 왼쪽 전체에 점토를 붙였다. 볼은 이전과 정반대인 우측으로 휘었다.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평균 3.3m 벗어났다.
최 연구원은 “점토 자체가 볼 비행에 영향을 줬다기보다는 임팩트 순간 점토와 페이스가 접촉하면서 페이스 방향이 살짝 뒤틀린 영향이 큰 것 같다”며 “진흙이 임팩트 때 페이스에 닿지 않을 정도로 조금 묻은 정도로는 볼 비행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1야드 차이에도 희비가 엇갈리는 프로 골퍼들에게는 민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거친 시멘트 도로에 문지르자 생긴 놀라운 변화
진흙보다 볼 비행에 훨씬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을까. 우리는 딤플 자체에 손상을 준 뒤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카트도로나 바위에 몇 차례 부딪힌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거친 시멘트 도로에 볼을 문질러 딤플을 닳게 했다.
테스트 조건도 달리했다. 진흙 묻은 볼은 주로 두 번째 샷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아이언으로 때렸지만 딤플이 손상된 볼은 티샷에서도 자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해 드라이버로 실험했다. 스윙 스피드는 일반적인 젊은 남성 아마추어 골퍼보다 조금 느린 시속 80마일로 했다. 이 정도의 스피드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면 더 높은 속도에서는 그 변화 폭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먼저 딤플이 손상된 부위를 볼 진행방향 우측에 오게 한 뒤 때렸다. 놀랍게도 볼이 날아가다 확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닌가. 중앙에서 왼쪽으로 벗어난 거리는 무려 16.3m나 됐다. 정상적인 볼이 우측으로 평균 4.1m 날아간 걸 감안하면 딤플 손상으로 인해 방향이 틀어진 거리는 20.4m에 달했다. 캐리(떠서 날아간 거리)도 약 15m나 줄었다.
딤플이 손상된 부위를 왼쪽에 두고 때리자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우측으로 크게 휘는 슬라이스가 난 것이다. 중앙에서 벗어난 거리는 평균 19m, 정상 볼과 비교하면 15m 정도 차이가 났다. 비거리 손실은 약 10m였다.
딤플의 손상 부위가 볼 진행방향의 앞이나 뒤에 위치하고 있을 때는 볼 비행 방향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대신 비거리는 약 3m 감소했다. 특이한 건 백스핀과 탄도에 있었다. 딤플 손상이 뒤에 있을 때 백스핀은 237rpm(분당회전수) 증가했지만 탄도는 불과 30cm 증가에 그쳤다. 딤플 손상이 앞에 있을 때는 백스핀이 소폭(67rpm) 늘었음에도 탄도는 오히려 10cm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
딤플 우측 손상되면 훅, 좌측 손상되면 슬라이스
최 연구원은 “딤플은 볼의 날개에 해당한다”며 “진행방향의 오른쪽 딤플이 손상되면 왼쪽의 양력이 더 크기 때문에 왼쪽으로 휘는 것이다. 날개가 하나가 제 역할을 못하니 탄도는 훨씬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볼의 앞이나 뒤쪽의 딤플 손상이 있을 때는 좌우 양력 차이에 큰 영향이 없기 때문에 방향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양력이 감소하면서 백스핀 양에 비해 탄도는 낮게 나온다”고 했다.
실험을 한 김에 볼 전체에 걸쳐 딤플이 손상될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도 궁금했다.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탄도는 4m 낮아졌고 비거리는 무려 19m나 감소했다. 양력이 전반적으로 크게 줄어든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딤플은 이렇듯 볼의 비거리는 물론 백스핀, 탄도, 그리고 방향에 이르기까지 비행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프로 골퍼들은 볼에 흠집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바꾼다.
일부러 성능에 변화 주면 ‘실격!’
이번 실험을 마친 뒤 번뜩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악성 슬라이스로 고민인 골퍼의 경우 일부러 딤플에 손상을 가한 뒤 그 부위를 진행방향 우측에 두고 티샷을 날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반대로 훅으로 고민이라면 딤플 손상 부위를 왼쪽에 둔 채 샷을 하는 것이다.
물론 심하게 휘어지던 샷이 곧게 펴지면서 볼이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할 수도 있겠지만 골프규칙으로 따지면 심각한 위반사항에 해당한다. 긁어서 볼에 흠을 내는 등 고의로 변화된 볼을 플레이할 경우에는 실격이다(규칙 4.2a). 당연히 동반자 몰래 하니 발각될 일이 없다고? 골프는 ‘신사의 게임’임을 명심하자. 영원히 퇴출되는 수가 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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