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폭염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송전망 부족으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이달 7일과 12일에는 총전력 수요가 100GW를 넘어서기도 했다. 예비 전력이 8~9GW대까지 떨어진 날이 7월 이후 사흘이나 됐다. 자칫 일부 발전소와 송전망에 문제가 생기면 대규모 정전 위기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뉴노멀’이 된 폭염과 함께 AI 시대의 도래는 전기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2050년까지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의 증설까지 고려하면 2038년 전력 수요는 지난해 대비 24% 증가한 129.3GW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 설비도 문제지만 전력망 확충은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금도 송전망이 부족해 동해안·경북·전남 등에서 생산한 전력을 주요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끌어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민의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등으로 인해 ‘전력고속도로’를 발전량만큼 깔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로축’ 전력망인 동해안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은 주민 반대 등으로 10년 넘게 표류하다가 2022년 말에야 착공됐다. 서해안 해저 HVDC 사업도 계획보다 뒤처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해안과 전남의 발전소 가동률을 일부러 낮추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원전 신규 건설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포함하는 에너지믹스를 통해 2038년 목표 설비를 총 157.8GW로 산출했다. 첨단산업을 뒷받침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송전망 확보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정쟁에 밀려 폐기된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이 법은 합리적인 토지 보상과 인허가 간소화, 민간 참여 허용 등을 골자로 한다. 또 현재 추진 중인 송전망 사업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력망 투자에 2036년까지 56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 한국전력의 경영 정상화 역시 시급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