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9304건. 인수합병(M&A) 전문 연구기관인 IMAA가 밝힌 올해 초부터 7월까지 전 세계에서 이뤄진 M&A 건수다. 올해 말까지는 3만3000건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 분야로 보면 금융 다음으로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많은 M&A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에너지 분야의 산업지형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M&A의 타당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재무구조 개선, 사업시너지, 조직구조 개선을 통한 성장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지 등을 봐야 한다. 에너지 산업은 현재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덩치를 키우기 위해 시장 내 가치사슬을 강화하고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 회사의 존속과 성장, 주주가치 제고가 가능해진다.
지난 달 발표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은 통합 자산 100조 원 규모를 가지는 세계적 규모의 기업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셰브론, 영국의 BP, 일본 ENEOS와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을 우리도 갖게 된다. 업계에서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의 합병은 필요하다. 주주 입장에서 ‘두 회사가 적절한 비율로 합병됐는지’, 그래서 ‘주주에게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봐도 이 합병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SK이노베이션이 밝힌 SK E&S와의 합병 비율은 대략 1대 1.19. SK E&S 1주당 SK이노베이션 1.19주를 배부한다는 것으로 그 근거로는 SK이노베이션이 11조 원, SK E&S가 6조2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지녔다는 점이 제시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시가총액 11조 원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았고, 비상장사인 SK E&S는 6조2000억 원을 합병가액으로 산정받았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의 가치가 낮게 평가돼 주주가 손해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수많은 참여자들이 회사의 자산·수익·성장성 등을 종합해 공개적으로 평가한 결과값이 바로 시가라는 점에서 시가 이상으로 공정한 평가방법을 찾을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합병 비율을 논할 때 어느 한 회사의 가치만 따져볼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합병하는 두 회사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절한 지가 더 중요하다. SK이노베이션의 입장에서는 매년 2조 원의 수익을 꾸준히 창출하는 SK E&S를 6조2000억 원에 산 것인 한편 SK E&S 입장에서도 제3자 거래 가격인 시가로 합병되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볼 때 이번 합병은 양사 모두에게 적절한 거래라 평가된다. 오히려 SK이노베이션 주주 입장에서는 분명 이득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꾸준한 현금 창출능력에 성장성까지 갖춘 알짜배기 회사를 합병했기 때문이다.
모든 합병의 당부는 개별 사안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정당한 합병이었는지 여부는 합리적인 투자자의 관점에서 판단이 필요하다. 합병의 목적과 효과를 기본적으로 보고, 합병으로 인해 즉각적으로 명백하게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했는지, 대주주의 지배력을 염두에 둔 다른 조치가 병행됐는지, 이사회가 제대로 된 검토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될 일이다
일각의 비판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합병에 찬성하는 리포트를 발간했다. 특히 글래스루이스는 지난 2022년 이후 SK이노베이션 시가가 자산가치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에 거래돼 왔기 때문에 이번 합병에서도 시가를 사용하는 것이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일부의 의견대로 SK이노베이션 자산가치로 합병비율을 산정했다면 거래 상대방의 문제제기로 합병이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합병 회사는 2030년까지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등의 지표면에서 수익성을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M&A도 크게 보면 거래이고 합병의 성공은 거래의 성공을 의미한다. 잘 된 거래인지 아쉬운 거래인지 주주의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기업은 그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주주 역시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시선으로만, 혹은 불안감에 따라 감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합병으로 인한 주주가치 제고, 성장성 강화 여부 등 M&A 이후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주의 진정한 이익은 합병 후 기업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글로벌 자문기관들이 이번 합병에 찬성한 것은 이런 점에서 감성적 반대론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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