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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알바인 줄'…. 보이스피싱 조직서 속아 일한 20대 '무죄'

보이스 피싱 조직 '현금수거책'으로 일해'

수사기관 행세 위조문서 전달·피해금 교부

"미대 출신·금융 비전공자, 속았을 가능성 커"

서울남부지방법원. 장형임기자




보이스피싱 조직에 고용돼 위조 문서를 피해자들에게 전달해 보여주고 현금을 여러 차례 수거해 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한옥형 판사)은 사기·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모(29)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게시했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채용 연락을 받은 뒤 사기 피해자들로부터 현금 수천만 원을 수거해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2년 4월 이씨는 금융위원회 직원 행세를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위조된 ‘금융범죄 금융 계좌 추적 민원’ 서류를 전달받은 뒤 이를 피해자 A씨에게 보여주고 현금 1600만원을 받아냈다. 또한 은행 직원 행세를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대로 피해자 B씨를 만나 1000만원을 전달받았다. 이밖에도 피해자 C씨로부터는 1900여 만원, D씨로부터는 두 차례에 걸쳐 총 8100만 원을, 피해자 E씨로부터는 1690만 원을 전달받고 사기 조직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은행 또는 수사기관 명의의 가짜 서류를 보여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문제는 이씨가 자신이 정상적인 법률 사무소에 고용된 줄 굳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채용 직후 업체로부터 "회사에 방문하기 어려운 고객을 만나 서류를 전달해 서명을 받아오고 필요시 의뢰금도 함께 받아오는 외근 업무"라는 설명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당시 코로나19가 유행했던 만큼 비대면·비접촉 면접 및 채용 과정이 흔했기에, 이 씨는 과거 자신이 경험한 채용 절차와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법원은 "본인의 업무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씨의 변호인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뒤 "이씨가 자신이 'ㄱ' 법률사무소의 외근직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채용되어 법률사무소의 정상적인 업무 중 일부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검사 측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씨가 범행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가담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씨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ㄱ'법률사무소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회사가 실재하는 것을 확인한 점, 채용 담당자로부터 ‘한 달 동안 임시직으로 외근 업무를 한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내근 업무를 하게 된다'는 안내를 받아 근로계약서 미작성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한 점,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로부터 '사건 관련 서류에 고객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어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문서를 자세히 살피지 않은 점 등도 유리한 정황으로 인정됐다.

아울러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만 27세로 미술을 전공했고, 학원 강사와 아르바이트 등을 한 경험은 있으나 금융이나 법률 관련 업종에서 일을 한 적은 없었다"면서 "자신에게 지시된 업무가 정상적인 법률사무소 업무의 일환이라고 믿는 것이 비상식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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