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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해” 희귀병 환자 두번 울리는 신약[메디컬 인사이드]

■ 이영인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

화농성한선염 환자 1만여 명, 남모를 고통

낮은 인식·편견 탓에 숨은 환자도 많을 듯

생물학적 제제 등장으로 치료 반응률 향상

비싼 약값에 20~40대 젊은 환자 희망 고문

한국노바티스가 올 3월 유튜브 계정 ‘화농성 한선염에 빛을 비추다’를 통해 공개한 웹드라마 ‘보통의 날’ 스틸컷. 사진 제공=한국노바티스




“주인공 은지가 벤치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결국 눈물을 펑펑 쏟아냈어요.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한국노바티스가 올 3월 유튜브 계정 ‘화농성 한선염에 빛을 비추다’를 통해 공개한 웹드라마 ‘보통의 날’ 제작에 함께한 윤경 씨는 "환자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끝까지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경씨는 드라마 속 은지처럼 '화농성 한선염(Hidradenitis Suppurativa)'을 앓은지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 단순 피부병? 반복되는 염증에 심하면 걷는 데도 지장


이름조차 생소한 화농성 한선염은 통증을 동반한 염증성 결절, 악취가 나는 농양, 누관(터널)의 병변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영구적인 흉터를 남기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병변은 주로 엉덩이·사타구니·겨드랑이 같이 피부가 접히는 부위나 회음부와 같이 민감한 부위에 발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돼 통증은 심해지고 병변 부위는 넓어지며, 종기가 터지면서 벌어진 피부가 잘 아물지 않아 만성적인 궤양이 생길 수 있다. 염증이 반복되다보면 피부 속까지 깊은 흉터가 남아 거동이 불편할 수도 있다. 일부 극단적인 경우 걷기와 같은 일상적인 행위도 어렵게 된다. 드라마에는 언제 갑자기 종기가 터져 고름이 새어나올지 몰라 항상 여분 옷을 챙겨다니고, 직장생활은 물론 대인관계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화농성 한선염 환자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상은 공개된지 한달 여 만에 누적조회수 32만 건을 돌파했다. 남모를 질환과 싸우면서도 아픔을 딛고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과정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중학생 때부터 종기로 고통” 낮은 인지도 탓에…이홍기도 ‘진단방랑’ 18년


화농성 한선염의 유병률은 0.00033%부터 4.1%로 인종에 따라 편차가 크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환자가 적은 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화농성 한선염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018년 7286명에서 2023년 1만756으로 집계됐다. 5년새 47.6% 늘었지만 여전히 1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아직 진단받지 못하거나 숨은 환자들이 상당할 것으로 짐작한다. 질환 인지도가 낮은 데다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병원을 방문하기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노바티스의 ‘화농성 한선염 인식 개선 캠페인’에 참여한 가수 이홍기의 영상은 온라인에서 많은 호응을 얻으며 공개 한달여만에 누적 조회수 100만 건을 돌파했다. 유튜브 ‘화농성 한선염에 빛을 비추다’ 채널 캡처


이영인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화농성 한선염은 단순한 피부질환이 아니라 환자의 자존감과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며 "복잡하고 장기적인 치료전략이 필요한데 질환 인식이 낮은 탓에 진단까지 평균 7~10년이 걸리는 것으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실제 밴드 FT아일랜드 보컬 이홍기는 2023년 말 화농성 한선염 질환 인식 개선 캠페인 영상에서 "중학생 때부터 엉덩이에 끊임없이 자라는 종기로 고충이 컸다"며 "종기제거 시술, 수술을 반복하며 18년 여의 진단 방랑을 겪은 끝에 화농성 한선염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 중등증 이상은 전신치료 필요…생물학적 제제 등장에 한줄기 희망




화농성 한선염은 아직까지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호르몬불균형, 면역체계이상, 유전적 요인 등이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환자에 따라 증상도 다양하다. 흔히 종기의 심각도와 증상에 따라 경증-중등증-중증의 3단계로 나뉜다. 경증은 농양터널이나 흉터 없이 여러 개의 농양이 나타나는 수준이다. 대부분 국소치료제, 항염증제 처방만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중등증 단계부터는 농양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농루관 및 흉터가 생긴다. 중증으로 발전하면 병변이 악화되면서 광범위하게 연결돼 흉터와 궤양이 나타나기 때문에 수술 또는 면역조절제 등 전신 치료요법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는 중등증 이상의 화농성 한선염에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이는 생물학적제제가 등장해 국내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종양괴사인자(TNF-α) 억제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가 2015년 화농성 한선염 치료제로 허가된지 8년 만인 2023년 인터루킨(IL-17 A) 억제제 '코센틱스(성분명 세쿠키누맙)'가 새로 적응증 확대 승인을 받았다. 중등도~중증 화농성 한선염 환자 1084명이 참여한 대규모 임상 3상 결과 코센틱스를 2주 간격으로 투여한 환자군의 16주차 시점 HiSCR(화농성 한선염 임상 반응)은 42~45%로 위약군의 31~34% 대비 증상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16주차에 HiSCR 반응 도달 환자의 75% 이상은 52주차까지 반응을 유지해 치료를 지속할수록 증상개선 효과가 더욱 높아졌다. 유럽화농성한선염재단(EHSF)은 이러한 임상 데이터를 토대로 작년 말 유럽피부과학회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중등도~중증 화농성 한선염 환자 중 기존 전신요법에 불충분한 치료반응을 보이는 환자의 1차 생물학적 제제 치료옵션으로 코센틱스를 권고했다. 이 교수는 "화농성 한선염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화된 면역기전을 갖는 질환으로 전체 환자의 약 50%는 휴미라 투여 시 만족할 만한 치료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기존 TNF-α와 차별화된 염증 사이토카인 신호경로를 조절하는 코센틱스의 도입으로 화농성 한선염에서도 개별 환자의 면역 프로파일을 고려한 정밀 치료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 유럽서 1차치료제로 권고됐지만…‘약값만 한해 1500만원’ 희망 고문


안타깝게도 대다수 화농성 한선염 환자들에게 코센틱스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중증 화농성 한선염이 2022년 1월부터 산정특례에 포함됐으나 코센틱스는 여전히 비급여 처방만 가능해 연 1500만 원 상당의 약값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한국노바티스는 당초 2023년 말 코센틱스의 급여확대를 신청했다가 자진 취하했고, 1년 만인 2024년 12월에 유럽 가이드라인 개정 사실을 반영해 급여 확대에 재도전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연내 코센틱스의 급여 확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영인(오른쪽)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가 화농성 한선염 조기 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세브란스병원


이 교수는 "질환의 복잡성과 면역반응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한 가지 기전만으로 모든 환자에게 최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중등도 이상의 화농성 한선염은 치료 개입의 적기를 놓치면 만성적이고 비가역적인 손상으로 진행돼 장기적인 의료비용 증가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화농성 한선염 환자군은 20~40대 젊은 성인이 많은데 고용 불안정 등 경제적 취약성을 동반하다 보니 비용 부담이 치료 지속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며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급여 확대와 더불어 교육 프로그램, 심리사회적 지지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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