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미국 기술주에 프리미엄이 생겼다. 그가 규제를 풀어 신기술 개발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는 관세전쟁부터 꺼내 들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 올 들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경우 5.1% 하락한 반면 중국 CSI300지수는 1.3% 하락에 그쳤다. 다만 올 1분기에 주요 빅테크들이 호실적을 내면서 나스닥과 S&P500이 낙폭을 줄이고 있기는 하다.
트럼프의 관세 협박이 오히려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습이다. 사실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 관세 부과로 수입 물품이 줄어들면 미국 내 품귀 현상에 따른 사재기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증폭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봤던 모습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관세전쟁이 시작됐을 때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와 함께 이미 소비가 냉각됐을 것이다.
최근 미국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한 4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6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유지되던 85~90 수준과 유사하다. 달러 가치도 올해 들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8.1% 절하됐다. 서학개미들은 트럼프발 혼란을 피해 지금이라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로 돌아와야 할까. 아니면 잘나가던 미국의 기술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까.
미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은 자산 가격에 너무 의존한다는 점이다. 미국 가계 자산 중 주식·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6%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저축이 본격화됐던 2000년대 초반의 18%보다 크게 높아졌다.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도 27배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다. 그만큼 신기술 기반 성장주들의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성장 기업들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주가가 하락할 경우 미국인들은 가난해질 수 있다. 어쩌면 미국인들은 미래의 부를 지금 끌어다 쓴다는 기분마저 든다.
반면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와 연기금·보험사 등의 부채 부담이 크다면 그것을 상쇄해줄 수 있는 자산 가격의 상승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미국은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기술주다. 최근 중국 화웨이는 고성능 인공지능(AI) 칩의 국산화를 추진하며 엔비디아를 위협한다.
과연 화웨이는 엔비디아 칩을 대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AI 칩의 글로벌 표준은 엔비디아다. 설령 화웨이가 쓸 만한 고성능 칩을 개발해도 표준에 익숙한 기업들이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는 달러 패권과도 비슷하다. 또 우수한 칩을 대량생산하려면 TSMC의 미세공정, ASML의 노광장비 등 기존 인프라의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미국이 막고 있다. 이들의 기술에 미국의 지식재산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애국심에 호소하며 성능은 좀 떨어지더라도 국산 칩 사용을 중국 기업들에 종용하지만 이들 기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될 수는 없다.
트럼프가 만든 갈등과 그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인해 매그니피센트7과 같은 기술주가 흔들리고 있지만 지금 세상은 스마트하게 변할 수밖에 없고 그 분야에 미국의 기술 기업들이 핵심 역량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잡음 속에서 저점 매집이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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