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가 원유 가격 하락 여파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 원유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저유가로 인한 실적 부진이 길어지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아람코는 올해 1분기 975억 리얄(약 34조 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5.3% 줄었다. 이에 따른 1분기 총 배당금은 213억 6000만 달러(약 28조 원)로 전년 동기 310억 달러(약 40조 원)에서 크게 감소했다.
미국발 관세 정책 여파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저유가 기조가 이어진 영향이다. 아람코는 1분기 배럴당 평균 76.30달러에 원유를 판매했는데 이는 1년 전 83달러에서 10% 하락한 수준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와 공급 과잉 등으로 4년 만에 배럴당 60달러 선이 깨지기도 했다. 현재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64달러 수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사우디의 균형재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추정하는 92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더불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생산도 증가했다. OPEC+은 지난 4월 13만 8000배럴을 시작으로 5월과 6월 각각 41만 1000배럴을 증산하며 하루 96만 배럴에 달하는 증산을 단행하고 있다.
아람코 실적 악화는 사우디 정부의 자금난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사우디 정부와 국부펀드(PIF)는 아람코 지분의 97% 이상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아람코에서 나오는 배당금이 사우디 정부의 주된 자금줄인 셈이다. 지난해 사우디 정부 수입의 60~80% 이상이 원유 수출에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유가 하락 시 같은 양의 석유를 팔아도 수익이 감소하는 만큼 재정적인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수치들은 아람코의 재무 상태에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며 "재정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사우디 정부의 주요 수입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사우디 정부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면서 “아람코의 배당금 축소는 사우디 예산 압박을 더 가중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1분기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전년 동기 대비 5배 가량 확대된 33억 달러를 기록 중이다.
사우디는 경제를 변혁하고 석유 중심의 수입원을 다각화하기 위해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203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업 주축은 매사추세츠주 크기의 사막 지역에 미래 도시를 건설하는 '네옴시티' 개발이다. 그러나 국제유가 하락과 건설비 상승으로 지난해부터 프로젝트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2030년 엑스포(EXPO)와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모니카 말릭 아부다비 상업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급락은 재정 적자와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전망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 브렌트유의 가격 전망을 기존 배럴당 69달러에서 62달러로 하향 조정하면서 사우디의 올해 재정적자가 300억 달러에서 최대 750억 달러로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순방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휴전 협상, 석유·무역·투자, 첨단 반도체 수출, 원자력 협력 등 굵직한 현안들이 논의될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