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원화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 허용되면 인가 단계부터 통화 당국인 중앙은행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입법 논의가 급진전되자 한은이 규제 권한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13일 한은 고위 관계자는 “미국도 스테이블코인 입법 과정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일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한은의 개입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에 앞서 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이달 9일 열린 한국금융법학회 학술 대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금융 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시 한은의 인가 개입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 달러화, 원화와 같은 법정화폐와 1대1로 가치를 고정한 가상자산이다. 이에 법정화폐와 유사하게 활용될 여지가 있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 팀장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자 진입 규제와 관련해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에 실질적인 법적 권한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통화정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충격 등이 발생해 가치가 불안정해진다면 상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 한은은 이러한 ‘코인런’ 가능성을 막고자 발행인 자격, 준비자산, 파산 시 절차 등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이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적극 피력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테더(USDT) 등 미국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결제나 해외 송금 분야에서 달러 대신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발행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향후 발행 인가권을 두고 정부 기관 간 논리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 또한 제기된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공개한 디지털자산기본법 1호 법안 초안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권한을 한은이 아닌 금융위원회가 가지도록 명시했다.
민 의원은 한은이 스테이블코인과 관련 통화당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에 대해 “한국은행의 이번 입장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기존 감독기관과 유관기관이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시사한 중요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디지털자산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러한 입장이 이제야 공식화된 점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을 남긴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대한민국이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초기부터 과도한 규제를 가할 경우, 민간의 혁신성이 위축되고 시장 성장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는 자칫 관치금융이라는 인식을 초래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디지털 생태계 전반의 혁신 기회를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실질적 역할 확대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있어 국익을 최우선으로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디지털자산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의 발전을 위해 한국은행과 함께 보다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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