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이오텍들은 자금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 속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김정곤의 바이오 테크트리>는 K바이오텍의 창업과 성장 과정, 기술과 비전 등을 종합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면과 온라인을 연계해 풍부한 투자 정보를 전달해드립니다.
오름테라퓨틱(475830)은 항체분해약물접합체(Degrader-Antibody Conjugate·DAC)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Dual-precision Targeted Protein Degradation·TPD²)’ 로 표적항암제를 개발하는 바이오텍이다.
오름테라퓨틱은 상장 이전부터 제약·바이오 업계의 유망주를 넘어 업계 판도를 바꿀 ‘앙팡테러블(Enfant Terrible·무서운 아이들)’로 주목 받았다. DAC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를 기반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허가와 글로벌 빅파마에 2건, 총 1조 5000억 원 대의 기술을 이전하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티피디 스퀘어는 항체, 링커, 페이로드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플랫폼으로 종양 뿐만 아니라 비종양까지 다양한 적응증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오름테라퓨틱은 최근 유방암 치료제인 ‘ORM-5029’를 독성 문제로 임상1상에서 자진 철회했다. ORM-5029가 오름테라퓨틱의 유일한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이라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고 공시 당일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회사측이 임상 환자의 안전과 함께 유망 파이프라인으로의 R&D 집중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은 점점 잦아드는 모습이다.
오름테라퓨틱은 새로운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혈액암 치료제인 ‘ORM-1153’을 선정하고 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 연말 관련 학회에서 ORM-1153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하고 내년 말에는 임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오름테라퓨틱은 티피티 스퀘어에 신규 페이로드를 붙인 차기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 항암제 이외의 면역질환제 등 비종양 분야까지 적응증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오름테라퓨틱이 임상 자진 철회로 불거진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름테라퓨틱의 설립부터 플랫폼과 파이프라인 등 주요 기술, 성장 전략 등을 분석해 본다.
생명공학에 관심이 많던 청년, LG생명과학·글로벌 빅파마 사노피에서 신약개발 내공 쌓아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는 어린 시절 부터 생명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생명공학자를 꿈꾸며 연세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신약개발 인재를 찾던 김용주 LG생명과학 연구소장(현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의 눈에 띄었다.
신약개발의 열망이 크던 그는 LG생명과학에 합류해 신약 파이프라인 발굴, 연구개발(R&D) 기획 등의 업무를 하며 5년 동안 연구원으로 생활했다. 김용주 대표 등 LG생명과학 출신 선후배들과 맺은 이 때의 인연은 오름테라퓨틱 창업 과정은 물론 현재까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LG사단인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최호일 펩트론 대표는 이 대표의 연세대 생화학과 선배이기도 하다.
이후 이 대표는 사노피 코리아 R&D 담당으로 입사해 사노피 아시아태평양 연구담당 소장까지 역임했다. 사노피에서 6년간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거점 연구소를 총괄하며 간암, 위암 등 아시아인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환에 대한 타깃 선정, 연구기획, 글로벌 공동연구, 라이센싱 등을 주도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신약개발 커리어를 쌓아가던 이 대표는 평소 연구 성과를 눈여겨 보던 김용성 아주대 공대 교수와 의기 투합해 2016년 8월 오름테라퓨틱을 공동 창업했다. 이 대표는 “대기업의 장점도 많지만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러가지 고려할 것이 많다”며 “좀 더 작은 모터 보트에서 핵심만 집중할 수 있는 게 벤처의 장점이라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름이라는 사명은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이 험난한 산을 오르며 길을 찾는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이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 대표는 “신약 개발이라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고 팀으로 해야 되는 거다”며 “항상 꾸준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올라갔다가 떨어질 때도 있고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또 실패하기도 하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대전에서 시작돼 판교, 광교 등 전국으로 이어지고 있는 혁신신약살롱이라는 바이오산업계 네트워크 모임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혁신신약살롱은 전국 각지의 혁신신약 개발자들이 모여 새로운 지식을 고민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커뮤니티다. 2012년 대전 내 소수의 신약개발자 모임에서 출발해 이제는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한 지식 공동체가 됐다. 이 대표는 모임을 통해 많은 바이오텍 관계자들을 만났고 글로벌 제약사와 벤처캐피털(VC) 인맥도 두텁다.
핵심 기술인 TPD² 플랫폼으로 표적 단백질 분해…ADC보다 독성은 낮고 효능은 높아
오름테라퓨틱의 핵심 기술은 항체분해약물접합체(DAC·Degrader-Antibody Conjugate)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Dual-precision Targeted Protein Degradation·TPD²)’ 다.
ADC가 유도미사일 역할을 하는 항체에 폭탄 역할을 하는 독성 약물을 페이로드로 붙인 치료제라면 DAC는 페이로드로 특정 표적만을 겨냥하는 TPD를 사용한다. 항체로 정상 세포를 피해 문제가 되는 암세포만 표적하고, TPD로 기존의 약물을 제어하기 힘든 표적을 분해해 효능을 높일 수 있다.
오름테라퓨틱의 DAC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TPD²)는 기존 TPD의 한계도 극복했다. TPD는 세포의 단백질 분해 기전을 활용해 특정 표적을 분해하는 저분자 화합물로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가리지 않고 비선택적으로 침투해 단백질을 분해시킨다. 반면 오름테라퓨틱의 티피디 스퀘어는 표적단백질분해제를 암세포 표면의 단백질을 특이적으로 인식하는 항체에 결합시켜 단백질분해제를 종양 세포에 특이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티피티 스퀘어는 표적단백질분해제(TPD)의 기능을 제곱으로 강화한 플래폼이라는 의미다. 이 대표는 “DAC는 기존 TPD가 갖고 있는 문제점인 오프타깃(약물이 의도된 대상이 아니라 다른 표적에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효과)과 ADC의 높은 부작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적은 용량만으로도 긴 반감기, 질병세포만 정밀하게 분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티피디 스퀘어 플랫폼은 오름의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단백질 생합성에 필수적인 GSPT1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분해하는 페이로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타겟 항체와 링커를 다르게 융합할 수 있어 목표 적응증에 따라 다양한 파이프라인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발 중단한 ‘ORM-5029’…신규 파이프라인 'ORM-1153' 가속도
오름테라퓨틱은 최근 핵심 파이프라인인 ORM-5029의 개발을 중단했다. 하지만 후속 파이프라인으로 ORM-1153을 발빠르게 지정하면서 임상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ORM-5029는 HER2 양성 유방암 및 기타 HER2 관련 고형암을 표적으로 하는 GSPT1 단백질 분해제로 미국에서 임상1상이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임상 과정에서 중대한 이상반응(SAE) 발생으로 임상을 중단했고 결국 임상 실험을 자진 철회했다.
오름테라퓨틱이 새롭게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내세운 ORM-1153은 혈액 악성 종양을 표적으로 하는 GSPT1 단백질분해제다. 오름테라퓨틱은 ORM-1153을 계열 내 첫 번째 DAC 치료제로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TPD 매커니즘과 항체의 종양 표적화 기능을 결합했다.
오름테라퓨틱은 ORM-1153을 IND 진입을 위한 연구단계로 진입시킬 계획이며 올해 말 관련학회에서 추가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내년 말에는 FDA에 IND를 제출한다는 목표다.
오름테라퓨틱이 2023년 10월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에 약 234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한 혈액암 치료제 ‘ORM-6151’도 주목할 만한 파이프라인이다. 현재 BMS가 ‘BMS-986497’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임상1상을 진행 중인데 임상 결과가 주목된다. 오름테라퓨틱은 2024년 7월에는 버텍스파마슈티컬스에 DAC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를 기술 이전했다. 다른 빅파마에 티피디 스퀘어의 추가 기술 이전이 이어질지 관심이다.
오름테라퓨틱이 현재 보유중인 현금은 약 1500억 원 수준으로 대부분 R&D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자금이 충분한 만큼 당장 유상증가 등 추가 자금 조달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오름테라퓨틱은 DAC 신규 페이로드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만일 우수한 파이프라인이 발굴될 경우 기술 이전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TPD의 원조 회사 거친 이상현 박사 영입…티피디 스퀘어 넘어선 새로운 플랫폼 준비 중
오름테라퓨틱은 최근 한국연구소장으로 이상현 박사를 영입했다. 이 박사는 TPD 기술의 원조로 불리는 미국 바이오텍 ‘아비나스’ 출신이다. 이 대표는 “이 박사를 중심으로 티피디 스퀘어 기술을 활용한 차기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며 “내년에는 (결과물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오름테라퓨틱은 티피디 스퀘어 플랫폼의 페이로드를 다른 물질(비공개 상태)로 바꿔 다양한 항체와 결합해 적응증을 넓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대표는 “기존 항암제 이외의 난치성 비종양 질환이 대상”이라며 “면역질환제로 확장하는 방향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공개된 중장기 비전에 따르면 오름테라퓨틱은 항체, 링커, 페이로드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플랫폼인 티피디 스퀘어의 강점을 이용해 종양 분야 뿐만 아니라 천식, 아토피 피부염, 캐슬맨병,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류마티스 관절염 등 다양한 비종양 분야 적응증으로 R&D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실수 용인하고 공유하는 ‘오픈 앤 트루(Open & True)’ 문화로 극복해낼 것”
오름테라퓨틱은 R&D 중심 혁신 신약개발 회사다. 혁신신약 개발에 전념을 다하겠다는 회사의 정체성은 오름테라퓨틱이라는 사명에도 담겨 있다. 전체 인력은 60명 가량인데 이가운데 80% 가량이 R&D 인력이다. 이 대표는 “R&D 인력은 대전 본사 연구소와 미국 보스턴 연구소로 지역적으론 나뉘어 있는데 기능적으론 ‘원팀(One-Team)’으로 이뤄져 있으며 활발한 소통을 통해 효율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름테라퓨틱은 기업 문화도 신약개발에 최적화돼 있다.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고 출퇴근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해도 상관없다. 특히 외국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대신 투명성을 강조한다. 창업 때부터 업무 협업 애플리케이션으로 ‘슬랙(Slack)’을 사용하고 있는데 모든 걸 오픈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일반적인 회사는 군대처럼 피라미드 조직으로 이뤄졌는데 오름은 점조직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며 “직책과 직급은 존재하지만 각 프로젝트 리더가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라미드처럼 조직은 커질수록 관료화되고 창의적인 일을 할 때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원할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프로젝트를 중심 협업 구조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실수와 실패를 과감하게 오픈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오픈 앤 트루(Open & True)’문화도 오름테라퓨틱의만의 문화다. 이 대표는 “이런 기업문화 덕분에 오름이 신약개발이라는 도전적인 여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름테라퓨틱은 최근 임상 철회를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삼아 재도약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조금 오르기 어려운 산을 오르다보면 정상에 못 오르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 새로운 루트를 찾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며 “이번 임상 철회 과정도 그런 과정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파트너쉽도 중요하고 R&D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임상에서 효능이 잘나와야 한다”며 “임상 과정에서 배운 것을 연구 단계에 잘 반영해 좋은 신약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글로벌 바이오텍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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