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문장으로 유명한 마키아밸리의 저작 ‘군주론(1532)’은 저자의 자국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대안 제시를 통해 이뤄졌다. 권모술수의 대명사인 마키아밸리즘은 그가 살았던 시대가 요구했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끝내고 근대로 이어지는 최초의 국제전으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전쟁을 소개한 신간 ‘이탈리아 전쟁 1494~1559’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5대 도시국가(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나폴리, 교황령)를 포함해 수십 개의 국가들로 분열된 채 내부 투쟁에 몰두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르네상스(문예 부흥)의 거품 현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494년 프랑스가 나폴리의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며 전면 침공을 시작하고 여기에 인근 강대국인 스페인, 독일, 영국, 튀르크 등이 개입하면서 이탈리아 반도가 국제적인 전쟁터로 전락한다. 도시국가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에 급성장한 국제 무역 과정에서 지중해의 부를 끌어모으며 문화 면에서도 절정에 이르러있었다. 하지만 각국은 이탈리아의 독립이라는 목표는 제시하지 못한 채 외세와의 합종연횡을 통해 생존을 확보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제 역사는 도시국가 시대를 넘어 프랑스 등의 영토국가로 넘어간다. 60여 년의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지중해의 패자로 불렸던 베네치아는 물론 마키아밸리의 고향이었던 피렌체도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결국 끊임없는 전쟁 속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이 주도한 르네상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문화 후원자 메디치 가문의 통치 아래 승승장구하던 피렌체의 몰락은 마키아밸리의 정치·역사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00년 전의 역사를 오늘날 되새기는 것은 당시 이탈리아를 둘러싼 환경이 지금의 한반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탈리아 전쟁에서 유럽에 ‘세력 균형’이라는 국제 정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등은 이탈리아를 제물 삼아 유럽 내 세력 균형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전쟁사에 관한 아주 세세한 사건들과 인물들까지 읽다 보면 상당히 헷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대강은 완벽하게 제시한다.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면 결국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진실 말이다. 3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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