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7일(현지 시간) “자결권은 캐나다인과 캐나다 정부가 보호하려는 가치”라고 밝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및 ‘51번째 주(州) 합병 위협’을 비판하는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독립 주권 국가로서 캐나다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했다.
캐나다를 방문 중인 찰스 3세는 이날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의회 개원식에서 한 ‘왕좌의 연설(The speech from the Throne)’에서 이 같이 말했다. 영국 국왕이 캐나다 의회 개원식에서 연설한 것은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이후 48년 만의 일이다. 영국 국왕은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의 국왕이기도 하다.
찰스 3세는 “캐나다는 오늘날 또 다른 중대한 순간을 맞고 있다”면서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법치주의, 자결권, 자유는 캐나다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이며 정부가 반드시 보호하겠다고 다짐하는 가치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난 수십 년간 캐나다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개방적 글로벌 무역 체제가 변화하고 있다”며 “동반자 국가들과 캐나다의 관계 역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캐나다인이 주변의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불안과 우려를 느끼고 있다”며 “근본적인 변화는 항상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캐나다 국민에 대한 위로를 잊지 않았다.
왕좌의 연설은 국왕이 의회 개원을 알리고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연설로 영국 국왕의 의회 연설인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에 해당한다. 통상은 국왕의 대리인인 캐나다 총독이 맡는다. 찰스 3세의 모친인 고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 넘는 재위 기간 1957년과 1977년 단 두 차례 ‘왕좌의 연설’을 했다. 영국 ‘킹스 스피치’를 영국 정부가 작성하는 것처럼, 이날 찰스 3세의 ‘왕좌의 연설’도 대부분 내용을 캐나다 정부가 작성했다. 다만, 발언 내용에 대해선 찰스 3세가 책임을 진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캐나다에서 그간 군주제에 대한 지지는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영토 병합 위협 등 주권에 대한 위기를 거치면서 반미 여론이 높아지며 영국 국왕에 대한 여론이 반전된 상황이다. 찰스 3세는 이날 기마 경찰 28명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로 상원 의사당으로 이동했고, 찰스 3세를 보기 위해 몰려든 많은 인파가 그의 등장에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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