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거시경제·금융 분야 수장들이 매주 머리를 맞댄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가 지난 30일 회의를 끝으로 약 3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지금 형태로 정례화 된 이후 지금까지 총 141차례 회의가 열렸다. F4 회의는 ‘비상경제 컨트롤타워’로 불리며 위기 때마다 민첩하게 가동돼 정책 공조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 상황 속에서 열린 회의는 국내외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범석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은 지난 3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F4 회의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과 미국 내 상호관세 유지 관련 항소법원 판결 등 대외 금융 리스크를 점검했다. 이번 회의를 끝으로 새 정부 출범 전 F4 회의는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F4 회의는 파이낸스(Finance) 4의 줄임말이다. 경제·금융·통화당국 수장 4인이 참석한다는 의미에서 언론과 정부 안팎에서 통용된 별칭이다. 공식 명칭은 거시경제·금융현안 점검회의로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022년 6월 취임 후 비상경제 회의 성격으로 격상해 운영되기 시작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전에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1차관 주재로 가끔 열리는 수준이었지만, 추 부총리 시절 장관급 회의로 격상되며 정례화됐다”고 설명했다.
F4 회의가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다. F4회의가 현재 형태로 정례화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강원도가 레고랜드 개발사업 관련 기업어음(CP) 지급보증을 거부하면서 단기자금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기재부, 한은, 금융위, 금감원은 즉각 F4 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으며, 정부가 CP 매입 등 유동성 공급 대책을 빠르게 가동하면서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됐다. 이 회의는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정례적으로 개최되는 구조로 자리잡았다.
정례화 이후 F4 회의는 각종 외환시장 충격, 미국 금리 인상, 지정학적 리스크 등 위기 국면에서 금융시장과의 소통 창구이자 정책 공조의 구심점으로 기능해 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날인 12월 3일 밤 11시 30분에 열린 긴급 회의는 F4 회의의 상징성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이후 13일까지 열흘간 토요일(5일)을 제외하고 매일 회의가 이어졌으며 일요일에도 회의가 열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외환·금융시장 불안은 눈에 띄게 확대됐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40원대까지 치솟으며 2022년 고점에 근접했고, 국채금리와 신용스프레드는 빠르게 벌어져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도 커지던 상황이었다. 이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F4 회의는 매일 아침 상황 점검과 메시지 조율, 시장 대응책 마련을 통해 공포심리를 억누르는 역할을 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F4 회의는 그 자체로 시장에 정부가 대응 중이라는 신호를 주는 수단이었다”며 “비상계엄 당시 금리와 환율이 더 크게 출렁이지 않은 것도 F4 회의의 시장 안정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열린 F4 회의는 총 37차례에 달한다. 전체 회의(141회) 중 약 26%가 이 시기에 집중된 셈이다. 금요일 정례회의 외에도 미국의 금리 발표나 상호관세 정책 등 불확실성 요인이 불거질 때면 화요일이나 목요일 등에도 수시로 회의가 열렸다. 지난 4월 26일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 중이던 와중에도 현지 시각에 맞춰 화상으로 F4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F4 회의는 통상 30~40분 내외로 진행되며, 회의록은 공개되지 않지만 회의 직후 기재부가 발표하는 메시지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다. 지난 3월 미국발 채권금리 급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1360원을 돌파했을 때 "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필요시 시장안정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F4 회의 메시지 한 줄에 외환시장이 즉각 반응하며 진정세를 보이기도 했다.
F4 회의의 향후 존속 여부는 차기 정부의 의중에 달렸다. 그러나 미 연준의 기준금리 조정, 상호관세 부과, 무역분쟁 등 대외 변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 수장 간 공조 창구의 필요성에 대한 여야 공감대는 높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제는 단순한 점검회의가 아니라 위기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며 “리스크가 터졌을때 신속하게 의사결정하고 대응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는 거버넌스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시국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던 F4 회의는 더 이상 조용한 내부 점검용 협의체가 아니다. 시장이 주시하는 정부의 실시간 대응 플랫폼이자, 위기의 시간을 가장 조용하게 지켜온 보이지 않는 경제 사령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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