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개인적인 가정사에 불만을 품은 한 남성이 저지른 범행이었지만 스스로 문을 연 승객들과 기관사의 침착한 대응 덕분에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았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모방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만큼 서울시 등 관계당국은 선거기간 동안 보안을 강화할 전망이다.
1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등은 전날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사건의 후속 조치로, 대통령 선거일인 오는 3일까지 지하철 역사, 열차, 인파 밀집지역에 대한 특별경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31일 오전 8시 43분경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 구간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승객 400여 명이 터널을 통해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60대 남성 A 씨가 기름통을 들고 열차에 탑승해 4번째 칸에서 라이터형 토치로 불을 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화재로 승객 23명이 연기 흡입 등으로 경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됐으며, 129명은 현장에서 처치를 받았다.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발생 당시 열차에서 대피한 한 승객은 “불이 난 줄 모르고 있다가 다른 칸에서 ‘도망치라’는 소리에 움직였는데, 전철이 멈추는 게 늦었다”며 “방송도 나오지 않아 시민들이 119에 전화한 후 스스로 문을 열고 서로 도우며 대피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승객은 화재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하철이 긴급 정차했고 뒤쪽에서 연기가 밀려왔다”며 “사람들이 ‘빨리 문 열어’라고 외쳤다”고 설명했다.
열차는 불연재 소재로 제작되어 불길이 크게 번지지 않았고, 약 20분 만에 초기 진화됐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열차의 골격과 바닥재, 객실 의자 등을 불에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등으로 교체해왔다. 기관사와 승객들의 침착한 대응도 참사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해당 열차를 운행하던 기관사는 승객의 비상전화를 받고 화재가 발생한 객실로 이동해 승객들과 함께 소화기로 불을 진압했다. 승객들도 출입문을 수동으로 개방하고 마스크나 옷깃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침착하게 탈출해 2차 피해를 막았다. 화재 현장에는 소방 166명, 경찰 60명 등 총 230명의 인력과 68대의 소방 장비가 투입됐고 화재는 오전 10시 24분경 완전히 진압됐다.
방화범 A씨는 오전 9시 45분께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범행 직후 선로를 따라 이동하다 여의나루역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던 중, 손에 묻은 그을음을 이상히 여긴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아내와의 이혼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건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방위적인 안전대책 이행을 지시했다. 오 시장은 “선거기간 중 유세 등으로 인해 인파가 몰리는 지역이나 각종 축제 및 행사장에 대해 시민안전 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서울시는 경찰, 소방 등 유관기관과 함께 비상대응체계를 재정비하고, 대선 당일까지 주요 혼잡역사에 대해 화재 예방 및 인파사고 방지를 위한 합동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대규모 유세장과 체육시설 등 시민 이용이 많은 곳에 대해서도 안전점검을 확대한다. 모방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해 특별 경계 근무를 시행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1~8호선 276개 역사와 열차, 차량기지 등을 대상으로 특별 안전관리에 들어갔다. 지하철 시설물에 대한 24시간 현장 순찰과 CCTV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주요 시설물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아울러 서울교통공사는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구상권 청구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서울종합방재센터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지하철 1량이 일부 소실되고, 2량에서는 그을음 피해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재산 피해 규모를 약 3억 3000만 원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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