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이후 움츠러든 노원·영등포·구로 등 서울 외곽지역 정비사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인허가 속도가 빨라지고, 용적률 상향 등 공급 확대 기조에 땅값이 낮은 곳도 사업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다만 공사비와 공공기여 상승에 따른 부담은 여전히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상계한신1·2차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이날 교보자산신탁과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인접 단지인 상계한신3차 추진위와 단일화 재건축 협약도 맺었다. 상계한신1·2·3차는 1980년대 후반 준공된 노후단지로, 규모는 총 1239가구다. 이들 단지는 애초 통합 재건축을 검토하다가 사업성 저하 우려로 철회했다. 재건축 후 단지 규모가 1000가구를 넘기면 기부채납 비율이 크게 오르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5만㎡ 또는 100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할 경우 사업자는 부지면적의 5% 이상 혹은 1가구당 3㎡ 이상 규모의 도시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이에 대안으로 고안한 게 단일 계약 사업체 구성 방식 정비사업이다. 재건축을 별도로 진행하면서도 같은 사업시행자(신탁사), 정비업체, 시공사를 선정해 규모의 경제로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상계한신3차도 교보자산신탁과 업무협약을 맺고 정비구역 지정 주민 동의율을 확보해 올해 3월 노원구에 제출한 상태다. 이상민 한신1·2·3차 단일화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1·2차가 사업시행자 지정에 나선 만큼 단일 계약 정비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시공사 선정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노원구에서는 4000가구 규모의 월계시영(미륭·미성·삼호3차)이 정비구역 입안제안 동의율 50%를 확보하고, 상계주공5단지가 시공사 선정을 위한 2차 입찰에 나서는 등 재건축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노원구는 서울에서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긴 노후 단지가 많은 자치구 중 하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준공 30년 초과 단지(50만 3000가구) 중 노원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달했다.
구로구 신도림 미성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도 올해 3월부터 정비구역 지정 및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신청을 준비 중이다. 1989년 준공업지역에 지어진 미성아파트는 총 824가구 규모로, 2023년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재건축 사업에 물꼬를 텄지만 234%의 높은 용적률 탓에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서울시의 조례 개정에 따라 준공업지역에 부지 면적 3000㎡ 이상 공동주택을 건립할 경우 최대 용적률이 400%까지 높아지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2030년 이주를 시작해 2034년 입주하는 게 목표다.
영등포구 양평동 ‘신동아’도 올해 4월 서울시 공동주택 재건축 사업 중 최초로 환경영향평가 협의 절차 면제를 받고 정비계획안을 마련 중이다. 신동아아파트 역시 준공업지역에 위치해 있어 최대 용적률을 400%까지 올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재건축 후 총가구 수는 기존 563가구에서 786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조합 측은 예상하고 있다. 이밖에 한강 조망이 가능해 영등포구에서도 알짜 재건축으로 평가받는 당산동 ‘유원제일2차’와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추진 중인 ‘신길2구역’ 등도 올 하반기 시공사를 선정하고 본격 사업에 닻을 올린다.
노원·영등포·구로 등은 정비사업 전후 시세차익이 크지 않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영향이 적은 편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을 통해 얻는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 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대 절반을 환수하는 제도로, 주로 강남권 단지가 타깃이다. 여기에 공급 부족 우려에 새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지원책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다만 급등한 공사비를 희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공기여 수준이 동반돼야 정비사업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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