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양국 관계의 발전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대(對)중국 강경책을 펴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 당국은 주변국이자 미국 동맹인 한국을 향해 적극적인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왔다. 중국 주요 관영 매체들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외교에 주목하며 한중 관계 개선을 기대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날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에서 “중국과 한국은 서로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수교 33년 이래 양국은 이데올로기와 사회제도의 차이를 뛰어넘어 손잡고 나아가면서 함께 성취했고, 양국 관계의 평온하고 건강한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어 “양국 인민의 복지를 증진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평화·안정과 발전·번영에 긍정적 공헌을 했다”며 “나는 중한 관계 발전을 고도로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현재 세계에는 100년 만의 변화가 가속하는 가운데 국제·지역 형세의 불확실 요인이 늘어나고 있는데 세계와 지역의 중요 국가로서 중국은 한국과 함께 수교의 초심을 지키고 선린우호의 방향을 굳게 하며 호혜 목표를 견지할 의향이 있다”며 “중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부단히 전진 발전하도록 함께 이끌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축전 내용은 윤석열 전 대통령 때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를 집중 부각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글로벌 역학 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임을 거론하며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린젠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전 세계 민주주의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우려한다’는 백악관의 언급을 겨냥해 “중한 관계를 이간질하지 말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린 대변인은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해왔고, 어떤 국가의 내정에도 간섭하지 않았으며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자기 행동에 근거해 중국을 억측하고 비춰보는 고질병을 고치고, 중한 관계를 도발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권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결정으로 경색된 한중 관계는 문재인 정부 당시 봉합되는 듯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미일 3각 공조 속에 한층 냉각됐다. 하지만 대중 강경책을 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중국은 한국을 향해 적극적인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무비자 입국 대상에 포함시켰고 같은 달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는 2년 만에 한중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올 2월에는 시 주석이 계엄·탄핵 정국 속에 방중한 우원식 국회의장을 정상급으로 예우하면서 올해 11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을 고려 중이라는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될 경우 한중 교류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고 수출통제나 문화 콘텐츠 제한 등 장애물이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와 밀착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중국 관영 매체들은 윤석열 정부 당시 악화됐던 한중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관영통신 신화사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은 이날 “윤석열 (정부) 시기에 중한 관계는 최저점에 빠졌고, 이재명(대통령)의 집권을 다소 낙관적으로 보자면 (한중 관계가) 나빠진다고 해도 이전보다 더 악화될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뉴탄친은 “더는 단순한 ‘친미미일(親美媚日·미국과 친하고 일본에 아첨하다)’이 아니게 됐다”고 강조했다. 잔더빈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중국 매체인 제일재경에 “한국의 대외 정책은 현재의 극단 일변도 상태에서 물러나 상대적으로 균형 잡힌 위치로 돌아올 것”이라며 “이는 중한 관계에 비교적 이로운 계기”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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