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일본의 장기침체 경험을 거울삼아 한국 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위험요인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부채 누증, 저출산·고령화, 성장전략의 한계라는 구조변화의 삼각파고가 한국경제에 이미 밀려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은은 5일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이라는 제목의 이슈노트를 통해 “한국은 과거 일본 버블경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밀한 거시건전성 관리와 신속한 구조개혁이 없다면 장기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버블기에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자산 거품이 터졌고 이후 은행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며 장기불황으로 진입했다.
한국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민간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7.4%로 일본 버블기 최고 수준(1994년 214.2%)에 근접했다. 특히 제조업보다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업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쏠리고 있어 자원배분 왜곡 우려도 크다.
한은은 “가계부채 관리를 지속하고,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 간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미 부실화된 부채는 신속히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버블붕괴 직후인 1996년부터 생산연령인구가 줄기 시작했지만 보수적 고용관행과 미비한 가족지원 정책으로 여성·고령자·외국인 노동력 활용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노동투입이 급감하고 디플레이션과 생산성 정체가 맞물려 장기침체가 심화됐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미 2017년부터 생산연령인구가 줄고 있고 노동투입의 잠재성장률 기여도는 2000년대 초반의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아울러 한은은 구조개혁 지연이 재정·통화정책 운용 여력마저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인구고령화와 경기침체가 겹치며 정부부채 비율이 2023년 240%에 이르렀고, 통화정책도 장기저금리와 유동성 함정에 빠지며 실효성이 약화됐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지만 고령화 진전에 따라 경직성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은은 “경기대응 목적의 적자재정 이후에는 흑자재정을 통해 재정여력을 회복하는 ‘재정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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