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틀 만에 대통령실에 AI 미래기획 수석실을 설치한다. AI 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실이 AI 전략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어 업계에서는 새 정부의 AI 정책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달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초과학기술 신문명 시대, 눈 깜빡할 새 페이지가 넘어가는 인공지능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며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으로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AI 3대 강국으로 우뚝 설 것…모두를 위한 AI 실현
이 대통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제1호 공약으로 AI 3대 강국(G3) 실현을 내세웠다. 올해 3월 14일 자신의 SNS에 'AI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글을 올린 뒤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AI를 방문해 업계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발표된 대선 공약집을 통해서도 AI 정책을 소개했다. 인프라, 인재 육성, 생태계, 글로벌 협력 등에 대대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미국과 중국 등 AI 양강을 추격하고 프랑스와 일본 등 경쟁 국가를 앞서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통령은 AI 등 첨단전략산업에 100조 원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국민, 기업, 정부, 연기금 등 모든 경제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국민펀드’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패권 경쟁’에서 맹추격하고 소버린(주권) AI’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AI 데이터센터를 ‘국가전략기술 사업화시설’으로 규정한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갖춘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해 'AI 고속도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어디서나 AI를 경험할 수 있는 ‘국가 AI 지도’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5만 개 수준의 고성능 GPU를 확보한다. 한국이 확보한 GPU는 엔비디아 H100급 기준 2000장 수준인데 이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내 GPU 1만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글로벌 차원의 AI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AI 인프라 구축) 공약은 AI 주권 확보 및 전략 산업 육성의 핵심 기반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는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 주도 고품질 AI 학습용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방송사 데이터를 구매해 텍스트, 음성, 이미지 등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고, 표준계약서 도입으로 AI 학습용 데이터 거래를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AI 인재 육성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AI를 위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강화 △지역별 거점대학에 AI 단과대학 설립 △AI 분야 우수 인재의 병역특례 확대 △해외 인재 유치 △제조업·정보통신기술(ICT)·뷰티산업·방위산업 등과 연계한 융복합 인재육성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AI·소프트웨어 교육 시수를 확대해 청소년들의 컴퓨팅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높일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통해 누구나 챗GPT와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전 국민의 AI 친숙도와 활용 역량을 높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보조 도구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해 국민과 기업에 오픈소스(개방형)로 제공할 예정이다. 전국에 ‘AI 기본역량센터’를 지어 AI 시대 미디어 문해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국가 경쟁력, AI 기술 역량에 달려
이 대통령이 국가 주도의 AI 산업 성장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산업 주권이 AI 역량에 달려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AI 활용에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대통령은 올해 3월 공개된 하정우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공동대표(네이버 퓨처AI센터장)와 오혜연 카이스트 AI연구원장과의 대담 영상에서 “AI 발달로 인한 생산성 증대를 특정 개인과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추진하는 AI 정책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이 대통령의 취임 당일 “지난주 한국에서 (임문영 전 더불어민주당 디지털특별위원장 등) 대통령의 팀과 만나 글로벌 AI 선도 국가를 향한 비전과 모든 국민이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오픈AI도 그 여정에 함께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 실행 전략 필요…온플법 우려도
다만 실행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체계적인 AI 인재 확보·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실연은 선거 전인 지난달 28일 “이재명 후보는 공공성 중심의 AI 확산 전략을 통해 생태계 기반 확대를 도모하고 있지만 기술 이전·실증·사업화 간의 유기적 연계 측면에서는 아직 구체적 방안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완할 정책적 설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과실연은 2005년 265명의 발기인이 모여 출범한 국내 첫 과학기술인 시민단체다. 태평양은 “재원 조달, 인프라 운영의 투명성, 민간과의 역할 분담, 에너지 확보, 윤리 및 안전 규제 마련 등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와 법률 리스크도 상존한다”며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AI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글로벌 정책 환경 변화에 발맞춘 민첩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공약에 포함된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I 개발에 앞장서는 플랫폼 기업들의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일부 글로벌 기업과 역차별 가능성도 제기된다. IT 업계는 온플법 제정을 지속해서 반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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