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라면 가격을 언급하고 물가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식품업계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말부터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을 줄줄이 올린 상황에서 정부가 다시 가격 인하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면과 과자 등의 가격을 올렸다가 결국 철회한 2023년 여름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9일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오늘은 그 점을 하나 챙겨봐야겠는데, 최근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고 그러더라"며 "라면 한 개에 2000원(도) 한다는데 진짜냐"고 물은 뒤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이 같은 지시가 알려지면서 최근 가격 인상을 단행한 식품업계가 긴장 상태에 빠졌다. 농심(004370)과 오뚜기(007310) 등 라면업체를 포함한 식품업체 대부분이 지난해 말부터 가격 인상을 단행한 상황에서, 정부의 가격 압박에 가격 인상을 철회한 2년 전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앞서 농심은 2022년 9월, 오뚜기는 같은 해 10월 라면 등의 가격을 올렸으나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듬해 7월 가격을 인상 전으로 되돌렸다.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에 출연해 라면 가격 인하 필요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 이후 농심은 신라면 등 주력 제품 가격을 2.7~7.1% 내렸으며, 삼양식품(003230)도 삼양라면 등 5개 제품 가격을 최대 6.7% 인하했다. 오뚜기와 팔도도 이 같은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라면 외에 과자 제조업체인 롯데웰푸드와 해태제과를 포함해 SPC와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도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정부는 이후에도 물가 압박 수준을 높이기 위해 빵, 우유, 스낵 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설탕, 식용유, 밀가루 등 가공식품 9개 품목에 대한 물가 관리 전담자를 지정하는 등 물가 인하 압력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과거와 같은 가격 인상 철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거세다. 밀 외에도 대두유와 포장재, 종이박스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른 데다, 내수 식품 시장이 침체돼 가격을 인하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는 급등했던 밀 가격이 다소 안정세를 찾는 등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심각해 그럴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라면을 포함한 가공식품의 경우 내수 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만큼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도 “내수 시장 침체로 영업이익률 감소가 계속되고 있는데 가격을 인하하라는 것은 지나친 압박”이라고 말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농심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74%로 전년(6.22%) 대비 1.48%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오뚜기도 7.38%에서 6.27%로 1.11%포인트 내렸다. 해외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삼양식품만 12.37%에서 19.94%로 오른 상태다.
업계는 ‘2000원 라면’이라는 지적도 다소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2000원대 라면은 소수에 불과한 데다, 프리미엄 제품이 더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날 쿠팡에서는 신라면 5개 번들이 4070원에, 진라면 매운맛 5개 번들이 3950원에 판매됐다. 1개로 환산하면 가격은 각각 814원, 790원에 그친다. A편의점이 판매하는 라면 중 1000원 이하 제품은 7%, 1000원 초과~2000원 미만 제품은 67%, 2000원 이상 제품은 26%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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