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간 베이비부머 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퇴직연금 제도 도입과 함께 꾸준히 자산을 쌓아왔다. 국내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은 2011년 50조 원 수준에서 지난해 말 기준 약 430조 원으로 9배 가까이 성장했다. 연평균 약 18% 늘어난 셈이다. 특히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2011년 3조 7000억 원에 불과했던 IRP 규모는 지난해 말 약 98조 7000억 원으로 26배 넘게 증가했다.
이처럼 ‘쌓기’에 있어서 퇴직연금 시장은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꺼내 쓰기’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미흡하다. 전체 퇴직연금 자산 중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7.4%에 불과하다. 나머지 82.6%는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다. 비교적 적극적인 운용이 가능한 확정기여형(DC)과 IRP만 따로 보더라도 실적배당형 비중은 28.5%에 그쳤다. 대부분의 연금 자산은 여전히 적립식 중심이며 타겟데이트펀드(TDF)와 같은 상품에 편중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시기가 곧 도래하는 지금부터는 “얼마나 잘 모았느냐”보다는 “어떻게 현명하게 꺼내 쓰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 최근 투자와 인출이 병행되는 구조를 갖춘 상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월 배당 상장지수펀드(ETF)로 주식, 채권, 리츠 등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와 배당 등을 모아 매월 분배금을 지급한다. 국내에서도 이미 수십 종의 월 배당 ETF가 상장돼 있으며 이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만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종목 선정이나 리밸런싱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여러 ETF를 담아 분산 투자하는 월 배당 EMP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형 상품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매월 두 번 분배금을 지급하는 월 배당 EMP 펀드도 등장해 은퇴자들의 다양한 인출 수요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인출기 특성에 맞춘 상품인 타겟인컴펀드(TIF)도 있다. TDF가 은퇴 시점까지 자산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TIF는 은퇴 후 자산을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주식 비중을 20·40·60% 등으로 구성한 다양한 유형이 있어 투자자의 위험 성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향후에는 이 둘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적립 기간 자산을 운용한 뒤 은퇴 이후 정해진 기간 일정한 방식으로 분할해 자금을 인출하는 구조다. 일정한 인출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남은 자산은 계속 투자돼 성장의 기회를 추구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이다. 시장이 상승할 경우 자산 가치는 커지고 하락 시에도 일정 기간 계획대로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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