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다른 주요국들보다 빨리 떨어지고 최근 역성장도 잦아졌다는 경고가 나왔다. 11일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 30년간(1994∼2024년) 6%포인트나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뜻한다. 분기당 역성장도 2010년대에는 2017년 4분기 한 차례에 그쳤지만 2020년대에는 다섯 차례나 발생했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외부감사를 받은 비금융 영리법인(3만 4167곳) 중 번 돈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 법인이 40.9%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잠재성장률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 문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급감, 생산성 저하, 자본 투자 위축, 산업구조 전환 미흡, 첨단산업 육성 부진 등이 겹친 결과다. 미국·영국·호주 등은 1인당 GDP가 일정 수준을 넘은 뒤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완만해지거나 멈추는 경향을 보였다. 저성장이 장기화하면 복지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반면 일자리 감소와 소득 정체 심화로 나라 경제가 구조적 위기로 빠지게 된다.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질 좋은 일자리 창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튼튼한 안보 체제 구축 등이 가능하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노동·연금 등 구조 개혁과 규제 혁파를 추진하면서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을 전방위로 지원해 신성장 동력을 점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저출생·고령화 문제 대응을 위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원 대책으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 새 정부와 여당은 일단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총 20조 원 이상의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확장 재정 정책은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생산성 제고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한 것에 걸맞게 노사 양측과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뚝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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