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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북녘땅 민속 전문 박물관 만들자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는 고향을 그리다 삶을 마친 실향민들의 묘지가 있다. 비록 고향 땅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운 곳에서 안식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 그곳에 묘지를 만들었다. 그 심정이 돼보지 못한 이들이 가늠하기 어려운 절절한 마음이다. 그곳 가까이에 자리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도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함께 품는다. 개방형 수장고로 운영되는 박물관에 들어서면 한눈에 보이는 것이 북녘땅 황해도 해주 지역에서 널리 쓰였던 듬직한 항아리들이다.

빼앗긴 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민속 문화 속에서 찾고 지키려 했던 송석하(1904~1948) 선생이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조사했던 자료들이 1946년 설립된 ‘국립민족박물관’에 축적됐고 국립민속박물관이 이를 계승하고 있다. 함경도 북청사자놀음이며 황해도 봉산탈춤에 쓰였던 생생한 실물 자료들이 사진 자료와 함께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평안도 박천의 명품으로 유명했던 반닫이며 황해도 해주의 명품이었던 소반 등 북한 지역의 여러 민속 자료들이 박물관의 어엿한 소장품으로 축적돼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동시에 남과 북이 분단된 지 80년을 맞는 마음 아픈 해이기도 하다. 같은 말과 문자를 쓰며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국가 공동체를 이뤘던 남과 북이 실질적인 왕래와 교류를 하지 못한 시간이 무려 80년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중에 남과 북은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양자 사이의 불신과 적대감은 점점 더 깊어져 가는 양상이다. 남에게 북은 무엇이고, 북에게 남은 무엇인가. 장차 신뢰를 회복하고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길은 과연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가.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의 민속 문화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동체의 생활 문화를 재구성하고 전승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한민족이라고 하는 넓은 테두리의 문화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지역 단위의 개성과 다양성을 드러내는 데는 분명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지역 분관을 설치해 개별 지역에 주목하려는 이유다. 같은 고민이 북한 지역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한국사의 당당한 일부인 북한 지역 전통 민속 문화를 다루는 전문적인 문화 공간을 마련할 필요성을 살필 때가 된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문화는 비단 ‘남한’ 지역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펼쳐진 역사적 전개의 산물이다. 월남한 북한 실향민들의 문화 또한 한국 사회에 오롯이 녹아 있으며 그들의 후예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세계 문화의 다양성까지 한국 문화 속에 녹여내 한 단계 더 높은 문화의 창출과 도약을 꿈꾸려고 하는 오늘날 북한 지역의 전통 문화를 제대로 살피고 전승해 창조의 동력으로 삼는 일은 문화 발전을 위한 기본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분단 80년, 남과 북의 문화 동질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남녘 땅에서 살아온 실향민들의 기억과 경험과 문화를 제대로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 아쉬우나마 국립민속박물관이 북녘의 민속 자료까지 소장하면서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상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박물관이 소장한 민속 자료를 기반으로 한국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북한 전통 민속 문화의 정밀한 연구와 보존·전시를 전담할 박물관을 맞춤한 곳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헤어진 반쪽이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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