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1만 30원)보다 14.7% 인상한 시간당 1만 1500원으로 요구했다. 내수 부진과 관세 전쟁 등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8%로 대폭 하향된 상황을 감안하면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외환위기와 코로나19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임대료·인건비·재료비가 동시에 오르며 빚만 쌓이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1112조 원으로 2019년 말 738조 원보다 50.6% 증가했다. 폐업하고 싶어도 빚 때문에 못하는 지경이다. 장사를 해도 최저임금조차 건지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수두룩하다. 2023년 기준 국세청에 연소득이 0원이라고 신고한 자영업자가 105만 명, 월 100만 원도 못 버는 이들이 920만 명으로 전체의 76%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파르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노동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외에 퇴직금 누진제와 1인당 2000만 원의 통상임금 위로금을 요구했다.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폐지됐던 퇴직금 누진제를 다시 꺼내고 대법원이 통상임금 판결의 소급 적용을 제한하자 위로금 형태로 요구한 것이다. 또 마트 노조는 일요일 의무휴업 법제화를, 공무원 노조는 임금 7% 인상 등 보수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광주·울산 등 지방의 버스 노조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노란봉투법 처리와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법정 정년 연장 등도 노동계의 청구서에 포함됐다.
1분기에는 경제성장률이 -0.2%로 추락했고, 소비·투자·수출 모두 부진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당장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경기 침체 현실을 외면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기업들의 경쟁력도 약화시킬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최저임금을 41.6%나 과속 인상하며 자영업자를 폐업으로 내몬 정책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을 현실에 맞게 적정선에서 인상하고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도입을 추진해야 노사가 공생하고 자영업자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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