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숙소를 무단 이탈해 강제 추방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참가자 두 명 중 한 명이 일이 힘들다면서 업무 변경을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는 첫 증언이 나왔다. 업무 변경 거절이 숙소 무단 이탈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시범사업을 허술하게 운영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미애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12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토론회에서 이 같은 증언이 담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시범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21명과 통역자 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와 면접을 했다.
응답자 A씨는 “작년 추방된 2명 중 1명은 세 집(곳)에서 일했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 8시부터 근무하고 기숙사를 갔다, 세 집 업무를 마치면 거의 밤 12시가 됐다”며 “‘일이 어려우니 수정해 주세요’하고 이야기했지만 (사측, 정부 등은) 해결 의지도 없고 모른 척 했다, 모른 척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작년 9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으로 시작한 시범사업은 시작 2주 만에 2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연락이 두절됐던 두 명은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출입국 당국에 적발돼 강제 출국됐다. 당시 노동계에서는 2명이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처우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고용부와 서울시는 당시 이들의 무단 이탈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저임금, 과업무, 무업무체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필리핀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전문자격을 얻고 한국에 왔지만 청소만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근무시간이 주 30시간에 불과해 실 수령액은 월 90만~130만 원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 목적인 저축이나 고국에 송금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일하는 가족 친척집까지 가서 일하거나 가정집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강요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일명 쪼개기 계약과 사측의 협박으로 인한 강제 귀국 가능성 탓에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일하는 가정에서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고용부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전날 설명자료를 통해 “가사관리사들은 월 156만~209만 원을 받고 사전 합의되지 않은 업무는 사측에서 못하도록 조정한다”며 “조사 결과 사측의 협박이나 가정 내 성추행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전날 서울시의회와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이주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회의’는 이날 고용부 담당자를 만나 고용부의 설명을 재반박했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가정에서 일어난 성희롱과 성추행은 내국인 근로자도 드러내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 설문에 응한 가사관리사가 누구인지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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