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칼럼] 미국 소도시에 출현한 비밀경찰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소요사태와 군병력 투입으로 LA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이보다 규모가 작은 전국의 지역사회에서도 혼란스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린다 샤피로프와 동업자인 샤라 스타이너는 뉴잉글랜드의 소도시인 그레이트배링턴에서 부티크 홈디자인 및 시공전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주민은 주로 예술가, 나이든 히피와 부유한 별장 소유주들이다. 지난 5월 30일 오전 11시 경 무장한 6명의 남성이 샤피로프와 스타이너의 사무실 밖에 나타났다. 요원들은 횡단보도를 무지개색으로 칠한 평온한 소도시가 아니라 살벌한 전쟁지역에 방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듯한 차림새였다.

준군사조직원 복장을 착용한 무리는 디자인 사무실 밖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히스패닉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 남성은 샤피로프와 스타이너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이 지역 조경회사에서 파견한 노동자였다. 두 여성 사업가는 자사 직원들은 모두 시민권자이거나 체류신분증명서를 소지한 합법 이민자라고 밝혔다. 샤피로프는 정원 조경사의 이름은 모르지만 전에도 본 적이 있으며 매우 친절해 보였다고 말했다.

샤피로프와 스타이너는 사무실 밖 주차장에서 초법적인 납치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샤피로프는 “가면이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들은 모두 권총을 차고 있었으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고 조끼 전면에 쓰인 글자도 서로 달랐으며 일부는 아예 글자가 없는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등에는 한결같이 ‘경찰’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은 옅은 색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보스턴 레드 삭스 모자를 쓰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요원들은 표시가 없는 차량을 타고 왔는데 이 중 일부는 다른 주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샤피로프와 스타이너는 복면 남성에게 신분증이나 영장, 아니면 추적중인 범죄인의 이름을 밝히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무리 가운데 한 명이 슬쩍 배지를 꺼내보였지만 어느 기관의 것인지 확인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스타이너는 배지가 제과회사인 크래커 잭스의 직원 명찰이었을 수 있다고 회고했다. 정원사는 그들이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두 여성 사업주는 요원들에게 반복적으로 신분 확인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신분증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했고, 심문중인 히스패닉 남성이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휴대폰 녹취 영상에 따르면 요원중 한 명은 “이곳에서 술 취한 사람이 차를 몰고 다니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샤피로프는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결국 히스패닉 정원사는 표식이 없는 차량의 뒷좌석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샤피로프는 이번 사건을 미국이 ‘경찰국가’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적 사례로 규정했다. 그녀는 지인을 통해 정원사가 아마 보스턴 인근의 이민시설에 구금됐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샤피로프는 구금된 남성의 가족은 수 일이 지나도록 그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구금된 남성 및 그의 가족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역 신문이 이 사건을 보도한 이후 여러 날에 걸쳐 협박편지에 시달렸다는 두 여성 동업자가 복면 요원들의 정체를 의심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그들이 갖고 있던 전술장비는 온라인으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또 편협하기 그지없는 차별주의자들과 범죄자들은 이민단속에 투입된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들이 신원노출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나 복면을 착용한다는 점을 악용해 광범위한 신분위장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ICE 요원을 사칭한 민간인들은 강도·납치·성폭행·공개협박을 저질렀다.

일부 민주당 지도자들은 최소한 익명의 불량배들과 구별될 수 있도록 ICE 요원들은 법을 집행할 때 얼굴을 드러내거나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은 연방직원의 신분노출은 그들을 극도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를 착용한 시위자들을 무조건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시위자들의 마스크 작용을 불허한다”고 선언하고 “굳이 얼굴을 숨기고 가려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건 시위자들이 아니라 연방 법집행관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현행법상 미국에는 비밀경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가면을 쓴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유색인종이나 성소수자 등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린치를 가한 길고도 추한 역사를 갖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관련태그
#해외칼럼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