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달리는 택시 네 대 중 한 대는 운전석이 비어 있다. 지난 4월 기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웨이모 로보택시가 주간 25만 건의 유료 호출을 처리했다. 웨이모는 그동안 굳건했던 우버와 리프트 양강체제를 깨고 2위로 올라섰다. 중국 우한에서도 무인 택시가 일상화했다. 바이두의 ‘아폴로 고(Apollo Go)’는 베이징, 우한 등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수행 중이다. 우한에서만 1000대가 고객을 실어나른다. 누적 승차 건수는 1100만 건을 넘어섰다.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은 ‘쩐의 전쟁’으로 하루가 다르게 막대한 자율주행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반면 국내 자율주행기술 업계는 역주행 중이다. 정부의 관심 부족과 3년째 계속 되는 투자 보릿고개 탓에 ‘참호전’에 갇힌 상황이다.
18일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자율주행·로보틱스 기업의 지난해 투자 유치 금액은 5252억원으로 2022년(5924억원) 대비 12% 줄어들었다. 2022년·2024년 모두 투자 건수는 똑같이 70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 건당 평균 금액이 84억원에서 75억으로 감소했다. 올 상반기(1~6월)도 어렵다. 누적 투자 유치 규모가 987억원에 불과하다. 이 중 210억원이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 ‘리얼월드’ 한 곳에 집행됐다. 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 투자가 전반적으로 저조한데 이마저도 상당수가 로보틱스에 몰리면서 사실상 자율주행 기술 쪽에는 VC 투자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라며 “자율주행업계가 자금, 인력 등 전반적으로 경색된 상태”라고 짚었다.
투자 가뭄이 심화되자 인력 유치와 연구개발(R&D)은 요원한 길이 됐다. 자율주행 업계는 당장 비용이 높은 인건비 줄이기부터 나섰다. 스타트업 정보 플랫폼 혁신의숲에 따르면 자율주행 로봇 ‘뉴비’를 만드는 기업 뉴빌리티는 올 1~4월 직원을 100명에서 58명으로 42% 감축했다. 뉴빌리티는 지난해 연말을 목표로 시리즈B 펀딩을 진행했으나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했고, 여전히 펀딩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정한 기업공개(IPO) 계획도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 시스템 플랫폼 모라이는 같은 기간 직원이 133명에서 81명으로 40% 가량 줄었다. 모라이가 마지막으로 펀딩을 유치한 것은 2022년 2월이다.
국내 1호 자율주행 상장사를 목표로 기업 공개를 추진하는 서울로보틱스도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매출이 41억9000만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49% 늘었지만 마지막 투자 라운드에서 받은 2800억원에 달하는 기업가치 평가와 괴리가 큰 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IPO로 방향을 잡았지만 애초에 기업가치 평가와 실제 돈을 벌고 있느냐의 괴리가 크다 보니 공모가 산정 등 과정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자율주행 관련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한다. 자율주행자동차 임시 운행 허가제도가 2016년 3월에 시작돼 10년차를 맞았지만 지난 달 기준 국내에서 자율주행 허가를 받은 차량은 전국에 걸쳐 471대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VC들엔 자율주행 기술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07억원을 기록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돈을 버는 자율주행업체로 꼽히는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경우도 지자체 수주 사업이 대부분이다. 전국 15개 지자체 사업 중 13개를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자율주행차 레벨4 성능인증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버스 등 대중교통과 물류로만 활용할 수 있어 경남 하동 등 인구 감소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에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지난 달 싱가포르에서 국내 기업 최초로 현지 공공도로 자율주행 운행을 위한 M1(안전운행자 탑승 조건의 자율주행)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최고전략책임자(CSO)는 “2019년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레벨3 자율주행자동차 법안이 통과됐을 정도로 법제적으로는 앞서있지만 시장은 한참 뒤처져 있다”며 “정부에서 전기차 섹터처럼 보조금 등 지원책을 통해 시장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익명을 요청한 학계 전문가는 “민간 자본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대낮에 서울 도심에서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녀야 한다”며 “기존 택시와 겹치지 않는 선에서 면허를 확대하고 유상 서비스를 늘리는 등 정책적인 신호를 줘야 민간에서도 반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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