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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이 사라진 맨해튼…美경제 경고음 울린다[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뉴욕 거리서 구걸·구직 이민자 자취 감춰

신분 불안한 한인들도 자진 귀국 고려

트럼프 이민 단속에 미국 노동공급 감소

실업률 착시 넘어 고용 리스크 주목해야

이민법원이 입주해 있는 미국 뉴욕시티 맨해튼의 제이콥 제이비츠 연방청사 앞으로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이맘때 뉴욕 맨해튼을 지나다 두세 살 남짓한 어린 아이를 안고 길가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을 봤다.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불법 이민자로 보였다. 어린 아이가 끼니를 제대로 못 챙겨 먹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와 앞에 놓인 바구니에 몇 달러를 넣었다. 얼마 못 가 당혹감이 몰려왔다. 몇 십 m, 몇 백 m를 지날 때마다 어린 아이를 안고 도움을 구하는 이민자 여성이 줄지어 앉아 있었던 탓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맨해튼 거리에서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안은 젊은 이민자 여성뿐 아니라 이민자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용직 일거리를 기다리는 광경도 보기 드물다. 짐작컨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단속이 본격화되면서 이민자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거나 본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과 뉴저지 일대 한인 자영업 사장님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추방을 두려워한 중남미 출신 직원들이 종종 연락 없이 나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홈디포 같은 소매점이나 스포츠 경기장까지 단속에 나서면서 이민자들은 더 움츠러들고 있다. 중남미 출신 이민자뿐 아니다. 얼마 전 뉴저지의 한 도시에서는 한인 아버지와 아들이 자택 앞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이민자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국 내 소비자와 근로자가 동시에 사라진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라앉은 이후 미국 경제를 안정시킨 이는 바로 이민자들이었다. 일손이 부족해 물가가 오를 때 이민자들의 유입은 인력 공급의 단비가 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 동안 미국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했던 이민자들은 불법과 합법을 합쳐 약 580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 내 노동력 공급 증가 추세는 되감기에 들어갔다. 올 3월 이후 두 달간 미국 내 해외 출생 근로자 수는 100만 명 감소했다. 최근 들어서는 이민 유입 감소 속도는 더 빨라졌다. 지난달 미국의 노동시장 참여 인구는 202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미국 경제를 안갯속으로 몰아넣는 또 다른 요인이다. 현시점 미국 경제에 대한 관심이 대체로 인플레이션에 쏠리는 것은 시장이 고용시장은 견조하다고 인식해서다.



이를 두고 착시라는 반론도 나온다. 노동인구 감소가 고용 둔화의 실상을 가리고 있는 탓이다. 노동인구 100명에 실업자 10명일 때나, 노동인구 90명에 실업자 9명일 때 모두 실업률은 10%로 같다. 실제로는 취업자 수가 90명에서 81명으로 줄어든 것이지만 실업률만 놓고 보면 고용시장은 견조해 보인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용시장의 현실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올 4월 “이민 유입과 노동 수요가 나란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것이 실업률이 지난 1년간 꽤 안정적으로 유지된 이유”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연준이 일단 경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 중 하나다.

현재 미국 고용시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미국 경제가 더욱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될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둔화)으로 이어질지 가르는 요인이다. 만약 이민자 감소로 인한 노동 공급이 일자리 감소보다 더욱 급격하다면 인건비가 올라 인플레이션 부담은 커지게 된다. 반면 노동 공급 감소보다 관세 충격으로 인한 인력 수요가 더 빨리 사라진다면 실업률이 늘고 경기는 둔화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이민자가 줄어든다면 미국의 경제 상황도 예전과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민자들이 거리에 넘치는 지난해 미국 경제는 독보적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고강도 관세를 유지하고 이민자 단속을 강화한다면 미국을 떠나는 이민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1년 뒤 미국이 ‘예외적으로 강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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