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민생 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인공지능(AI) 강국 진입을 위한 민관 공동투자 등 굵직한 대책들이 발표되고 있으나 인구위기 대응책은 통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난해 여야 공감 속에 진전되던 ‘인구부’ 신설 논의가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실종됐다. 지난해 그간 지속적으로 추락하던 합계출산율이 반등하면서 저출생에 대한 경각심이 완화됐기 때문일까. 2023년 말 통계청은 합계출산율이 올해 0.65명으로 저점을 찍은 후 반등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2023년 0.72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5명으로 상승하면서 출산율의 저점이 예상보다 2년 앞당겨졌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미뤘던 결혼이 늘어나면서 시차를 두고 첫 번째 출산으로 이어진 영향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들어 첫째아뿐만 아니라 둘째아 출산 또한 늘어난 데다 첫째아와 둘째아 출산 간 시차 역시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2023년 이후 정부가 적극 추진한 저출생 대응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소식에도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여전히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우리와 세계 최저 출산율 1위를 다투는 홍콩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그 전해의 0.75명에서 크게 높아졌다. 여전히 0.7명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소폭 상승했다고 안도하는 것은 아직 사치다.
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 의향을 높이려면 긴 호흡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결혼과 출산의 기반이 되는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 주거비 및 자녀 교육비 부담 경감, 일·가정 양립 문화 정착 등은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 없이 달성하기 어렵다. 새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이런 구조적 변화 대신 관련 선행 연구에서 그 효과가 작거나 단기적인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는 현금성 지원 확대 정책에 집중돼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인구위기의 또 다른 축인 급격한 고령화에 대해서도 정부의 대비책은 갈 길이 멀다. 1964~1974년생인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연간 약 100만 명씩 법정 정년인 60세에 이르기 시작했고 5년 후면 차례로 65세 이상 고령층에 편입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20%를 넘어선 고령층 인구 비중은 앞으로 더욱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고령 친화적 일자리 확대, 지속 가능한 고령자 돌봄 및 의료 서비스 체계 구축, 돌봄 인력 확보, 고령자의 독립적인 생활 기반 마련 등 대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특히 이런 대책에 소요될 대규모 재원 마련 방안은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향후 5~10년은 제2차 베이비부머가 완전히 고령층에 편입되기 전인 동시에 이들의 자녀 세대로 출생아 수가 많았던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의 결혼 적령기다. 이 기간이 바로 놓쳐서는 안 될 인구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인구정책의 의사 결정 과정, 즉 거버넌스를 효과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인구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본격 대응을 시작한 시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2005년으로 볼 수 있다. 이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위기 대응책이 미비한 것은 위원회 형식의 한계로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던 탓이 크다. 저출생·고령화 대응은 본질적으로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교육부·행정안전부·법무부 등 여러 부처 간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정립할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부처 간 칸막이에 막혀 효과적인 정책 추진이 어렵다. 또한 이 컨트롤타워가 관련 데이터와 정책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 권한도 가져야 인구정책이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지난해 9월 이미 국무총리실 산하에 ‘인구부설립추진단’이 설치됐고 인구부 관련 법안의 세부 사항에 대한 여야 간 이견 역시 크지 않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인구부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는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므로 인구부의 설립은 향후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벤치마킹할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진짜 성장’은 인구위기 극복에서 시작한다. 인구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의 번영은커녕 존속조차 보장할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인구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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