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핵 시설 폭격 이후 이란 의회가 22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반격에 ‘정권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며 강하게 압박했으나 이란이 실제로 해협 봉쇄에 나설 개연성은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 속에 유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브렌트유 선물은 이날 장 시작과 동시에 5.7% 상승해 배럴당 81.40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약 13% 상승했다. 23일 서울 시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8.07원 오른 ℓ당 1732.74원으로 3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 액화천연가스(LNG) 소비량의 약 20%가 지나는 주요 수송로다. 우리나라 원유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 가운데 99%가 이곳을 통과한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위기는 있었지만 전면 봉쇄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정부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정유 업계가 200일분의 비축유와 법정 비축 의무량을 초과한 LNG를 확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차단되면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망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악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동 사태가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는 우리 증시는 물론 추가경정예산 집행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또 석유류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면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에너지 공급망과 재고 상황을 재점검하고 유가·환율·물가를 밀착 관리하면서 수출에 직결되는 물류 상황도 살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유가와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기 위축 속에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악재가 덮치면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 정부는 대통령실과 거시경제금융회의(F4),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민간 기업과 함께 상황별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제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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