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골목 식당 대신 한정식 같은 고급 음식점에 사람들이 더 몰릴 것입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 전통시장에서 10여 년간 순댓국밥 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전 국민 민생 회복 지원금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코로나 당시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반으로 장사가 다시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곧 실망으로 변했던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받은 국민들은 A 씨의 기대와 달리 시장 대신 대로변의 대형 프랜차이즈 한우 전문점을 찾았다. 골목 상점에서 물건을 사기보다는 학원으로 향했다. 이런 점 때문에 A 씨는 이번에 소비지원금이 또 나온다는 얘기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A 씨와 같은 영세 소상공인들의 현재 상황이 코로나 당시보다 더 어렵다는 점이다. 코로나 당시 영세 소상공인에게 닿지 않았던 소비지원금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집행 시 영세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핀셋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25일 서울경제신문이 BC카드 신금융연구소와 함께 전국 349만 개 가맹점의 올해 1~5월 카드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 매출 3억 원 이하 영세 가맹점의 매출액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보다 6.2%나 감소했다.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는 영세 소상공인들의 한탄을 일각에서는 단순한 엄살로 치부하지만 매출 데이터 분석 결과 이는 엄연한 실제 상황이다.
영세 소상공인들은 매출뿐 아니라 매출 건수(-12.0%), 이용자 수(-14.3%) 모두 코로나 때보다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매출액, 매출 건수, 이용객 수 모두 4.7%, 6.2%, 5.9% 줄었다. 연 매출 3억 원 이상~5억 원 이하 소상공인들은 코로나 당시보다 매출이 4.8%,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는 7.3%, 10억 원 이상~30억 원 이하는 9.5% 늘었다. 경기 침체의 영향을 영세 소상공인이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이다.
우상현 BC카드 부사장(신금융연구소장)은 “전 국민 지원금은 코로나 때처럼 자영업자의 매출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지역 단위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핀셋 소비 유도 정책이 동반된다면 정부 재정 투입에 따른 소비 승수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보편적 지원이 집행됐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보다 다음 해 실행된 ‘코로나 상생 국민 지원’과 ‘코로나 상생 캐시백’ 정책이 동시에 이뤄진 시기에 매출 개선 효과가 더 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5월 시행된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은 1인당 40만 원을 지급한 반면 2021년 9월 지급된 코로나 상생지원금은 중위소득 180% 이하를 대상으로 1인당 25만 원을 지급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코로나 상생 캐시백’을 통해 2021년 2분기 월평균 카드 소비액 대비 해당 기간 3% 이상 추가 지출 시 지출분의 10%를 현금으로 환급해줬다. 소비를 늘릴수록 환급액이 높아지면서 민간소비 창출을 유도했던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캐시백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늘리고 영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소비한 금액에 대해 환급률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영세 소상공인보다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기는 하지만 중소 소상공인들 역시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올해 매출 회복세를 보인 연 매출 3억 원 이상 소상공인들 또한 매출 건수와 이용객 수는 역성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대비로는 모든 구간의 소상공인들의 매출과 매출 건수, 이용객 수가 모두 감소했다. 실제 소상공인 규모 가운데 가장 큰 연 매출 10억 원 이상~30억 원 이하도 지난해 대비 매출은 4.6%, 매출 건수와 이용객 수는 각각 5.4%, 4.8% 줄었다.
업종별 소상공인 소비 감소율을 보면 레저용품, 가구, 의류, 카페·디저트, 학원 등의 업종이 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레저용품의 경우 올 1~5월 지난해 동기 대비 17.5%, 의류 14.8%, 카페·디저트는 13.7% 감소했다. 특히 레저용품과 가구 판매점은 매출액은 물론 매출 건수와 이용자 수 모두 가장 많이 감소한 상위 2개 업종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이 식품 등 당장 필요한 품목 외에는 지갑을 닫은 것이다. 반면 다른 주요 업종 가운데 마트는 매출액과 이용자 수가 각각 6.3%, 7.5% 줄어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소상공인 매장 이용 고객 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30~50대의 경우 결제 금액과 결제 건수, 이용자 수 모두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였다. 지역별로는 경기·전북(-8.4%), 충남(-8.2%), 인천(-7.7%) 등의 올해 1~5월 소상공인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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