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박물관 유물’이 아닙니다. 창조적 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죠.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존 임무였던 연구와 보존, 전시에서 더 나아가 이제 스토리를 만들고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이 되려고 합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취임 1주년을 앞두고 2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났다. 인터뷰는 국립박물관의 존재 목적과 나아갈 길, 김 관장의 포부 등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앞서 그는 올 초 올해의 비전으로 공감·개방·융합·공존의 4대 박물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더불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 취임 이후 1년간의 평가에 대해 김 관장은 “외형적인 변화를 먼저 말하자면 올 들어 5월까지 관람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늘었다. 우리 박물관이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이는 국민과 함께한다는 의미”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224만 명이 방문했는데 이는 지난해 동기(147만 명) 대비 64% 늘어난 수치다. 앞서 2024년 한해 동안에는 397만 명이 찾았다.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일종의 박제된 유물을 새롭게 문화 콘텐츠로서 활용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는 김 관장의 말이 더 새롭다. 문화유산이자 유물로서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이 박물관의 원래 목적이지만 만약 문화 콘텐츠라면 이를 산업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바로 문화 산업이다. 영화와 드라마, 공연 등에서처럼 문화유산을 활용해 문화 산업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 등을 통한 온라인 비대면 시대지만 오히려 오프라인 박물관을 찾는 관객은 늘고 있다. 오프라인 박물관은 현장에 와야만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관장은 “사람들은 단순히 유물만을 보려고 박물관에 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숫가락·젓가락·국그릇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관심이 아니라 밥상이 어떻게 차려져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바로 유물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이 이제 박물관의 역할이 됐다”고 강조했다.
문화 콘텐츠로서의 인식은 최근 개막한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대전’에서 분명히 드러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보통 조선 전기 시대가 유명하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조선 전기의 문화를 다룬 적은 많지 않았다”며 “이 시기는 조선 문화의 정수이자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문화 전통이 시작된 시기”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도자기·글씨·그림·불교미술 등 자체 소장 중이거나 해외에서 들여온 조선 전기 유물을 보여주는 데서 더 나아가 이들 소재를 스토리로 엮어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 유효했다. 공교롭게 현재 우리나라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유료인 특별전은 6월 10일 개막 이후 보름 동안 약 1만 7000명이 찾았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11월에 예정돼 있는 특별전 ‘이순신’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임진왜란에 대한 융합연구를 바탕으로 전란 속에서도 평화를 염원한 인간 이순신에 집중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진행 중인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등 특별전도 문화 다양성 확보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도다. 그는 “우리가 아닌 타자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11월 최초의 이슬람 문화 상설전시실인 ‘이슬람실’을 신설하려는 것도 다양성과 공존을 지향하는 시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어린이 박물관’ 확장 이전과 ‘뮤지엄 아카데미’ 교육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어린이 박물관은 2029년까지 현 어린이 박물관의 면적 대비 약 3배로 확장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어린이 발달단계별 맞춤형 체험 전시 및 교육존을 조성할 계획이다. 김 관장은 “어릴 때부터 박물관 문화에 익숙한 어린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로 방문하고 또 다른 가족들과 함께 올 수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운영 중인 ‘뮤지엄 아카데미’는 공급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교육이 국립박물관 학예 인력 위주였다면 이제는 다른 박물관까지 포함하는 국립·공립·사립 등 학예 인력과 대학 등 예비 전문인력으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유물만큼 좋은 사람이 중요하다. 큐레이터 등 사람에 대한 교육을 늘리려 한다”고 말했다.
문화 콘텐츠 소재의 확대에 따라 관람객이 늘면서 박물관 문화 상품 이른바 굿즈도 인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예 ‘뮷즈(뮤지엄+굿즈)’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냈을 정도다. 지난해 박물관 뮷즈 매출액은 213억 원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김 관장은 “박물관 기념품이 그동안 유물 모양 자체에 제한된 한계가 있었다면 이제는 특징을 살리고 또 구입자들이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한다”며 “신윤복 등 옛 인물이 그려진 소주와 막걸리 잔이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든지, 석굴암을 입체화하고 돔까지 만들어 문을 열었을 때 빛을 비추는 등의 문화 콘텐츠로 재구성한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뮷즈는 유물을 따라 전국 지방으로 나가고 이제는 해외로도 보급되고 있다. 국외 박물관의 ‘한국실’을 강화하는 것도 김 관장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그는 “이제는 A급 유물도 해외에 전시해 우리 문화의 진수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국외 박물관의 한국실에서 일할 현지인 큐레이터도 직접 우리가 교육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김 관장은 1990년대 초 당시로는 드물게 사학과 출신으로 박물관을 첫 직장으로 선택했다. 그는 “당시 생각에 앞으로는 책만 보는 세상은 아닐 것이고 현장이 중요하다고 봤다”며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지원했는데 몇 년 후 유럽의 박물관을 견문할 기회가 있었다. 나이 많은 사람이 평상복 차림으로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케임브리지대의 수업이라고 했다. ‘나의 선택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대학들이 박물관에서 주요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강의실에 안주할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변했다.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도 박물관을 친숙하게 들락거린다. 김 관장은 “학교나 박물관, 연구소, 문화 행정공무원 등 ‘현장성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도 박물관 뮤지엄 아카데미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 관장의 개인적인 경험은 이제 일반화될 듯하다.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2012년 대학으로 옮겼다가 지난해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차관급)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역 국립박물관 13곳도 관할하는 문화체육관광부 핵심 소속기관이다. 그는 주요 인사 가운데 박물관에서 대학으로 갔다가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온 첫 사례다.
△1965년 경북 영천 △서울대 국사학과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석사·박사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객원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장 △2012년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국민대 명원박물관장 △한국상고사학회장 △2024년~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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