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19세기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를 소재로 한 관광 상품이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제 범죄를 오락거리로 소비한다는 윤리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런던 동부 이스트엔드에서 운영 중인 '잭 더 리퍼 투어'에는 매일 밤 수백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 1888년 최소 5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신원 미상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의 범죄 현장을 도보로 돌며 사건 해설을 듣는 90분간의 야간 프로그램이다.
관광객 급증으로 가이드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작용도 심화되고 있다. 유명 살인사건 발생 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자극적인 해설을 위해 살인 행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여성 피해자를 희화화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일부 가이드는 실제 피해자 시신 사진을 보여주거나 영화 '사이코' 배경음악을 틀며 긴장감을 유도한다. 커다란 칼을 들고 관광객을 놀래키는 퍼포먼스까지 등장했다.
투어 흥행에 따라 해당 지역에는 살인자 이름을 딴 상점들이 즐비해졌다. 이발소 '잭 더 클리퍼', 패스트푸드점 '잭 더 치퍼', 패션 매장 '잭스 플레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는 감자 요리 판매점이 '재킷 더 리퍼'라는 상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매일 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한 주민은 "집 창문 앞에서 '이곳에서 배꼽까지 배를 갈랐다'는 가이드 설명을 매일 밤마다 듣는다"며 "아이를 낳자마자 이사 간 이웃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가이드가 범죄 현장 실제 영상을 벽에 투사해 보여주고,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농담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말 엄청난 모욕"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2015년 개관한 '잭 더 리퍼 박물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애초 '이스트엔드 여성의 삶과 역사'를 기리는 공간으로 건축 허가를 받았지만, 실제 전시는 리퍼 사건 중심으로 구성됐다. 박물관 측은 "살인을 미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10년간 '잭 더 리퍼 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며 기념품점에서는 리퍼 모양 인형과 살인자 실루엣이 그려진 티셔츠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필립 스톤 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수는 "잭 더 리퍼는 실제 범죄자인데도,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대중문화 아이콘처럼 소비되고 있다"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진 위험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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