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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한미 ‘칩&쉽 동맹’이 뜬다면

최규종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근부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다행히 8월 1일까지 유예했다. 정부의 고민이 클텐데 지난 5월 서울서 열린 ‘한·미 정책세미나’에서 헤리티지재단 관계자가 ‘반도체-선박 동맹’을 제안한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칩’(Chip·반도체)과 ‘쉽’(Ship·선박)은 매우 이질적이다. 칩은 머리카락 두께 ‘10만 분의 1’의 세상을 보지만, 쉽은 초대형 빌딩 높이를 다룬다. 칩은 부품이고 쉽은 시스템이다. 칩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쉽은 물에서만 가치가 있다. 그러나 차이점은 여기까지고 주목할만한 유사성이 많다.

첫째, 미국의 위상 저하다. 칩은 미국이 발명하고 미국이 주도해왔다. 하지만 생산 구조 분화와 동아시아의 약진에 밀려 1990년 40%에 달하던 점유율이 최근 10%로 하락했다. 쉽도 마찬가지다. 해양 국가를 지향하며 1·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에게 조선업은 자랑이었다. 한때 80%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지금은 0.1%에 불과하다.

둘째, 경제 및 군사안보와 직결된다. 칩은 인공지능(AI), 로봇, 양자컴퓨터 등 미래산업은 물론 드론, 미사일, 로켓 등 첨단무기 제작에 필수적이다. 쉽도 평시에는 상품, 에너지를 수송하지만 전시에는 병기와 군수물자를 전장으로 나른다. 셋째, 중국의 무서운 굴기이다. 중국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칩 자급률을 20%로 끌어올렸고 쉽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한미 관계에 ‘칩’과 ‘쉽’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는 보완성과 상징성이다. 한국은 미국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한국은 첨단 ‘칩’과 친환경 고부가 ‘쉽’의 글로벌 리더이다. 상징적 측면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애정이 깊은 ‘잊혔던 미국인’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미국 방문길에 현지 전문가로부터 미국과 협상할때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잊혔던 미국인’에 주목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 표현은 트럼프 1기 대선 승리 연설문에 등장하는데 정확한 문장은 “잊혔던 이 나라 남녀(미국인)들이 더이상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흔드는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잊혔던 미국인’은 그간 워싱턴 정치 무대에서 밀려놨던 농민과 공장 노동자, 중산층을 뜻한다. 지역적으로 ‘플라이오버 스테이츠(flyover states)’의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플라이오버 주는 '부유한 대도시 사람들이 여행하다 비행기에서 잠깐 내려다만 보는 별 볼 일 없는 지역’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쇠락한 ‘러스트 벨트’가 속해 있고, 선거마다 트럼프의 텃밭이기도 했다.

‘플라이오버 주’와 대도시 미국인의 삶은 차이가 크다. 대도시의 금융가들과 다국적기업 경영진들이 국제 분업과 자유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안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은 중국발 저가 공산품에 밀려 실업과 곤궁에 시달렸다고 믿는다. J.D. 밴스 미 부통령의 저서 ‘힐빌리의 노래’에 잘 묘사돼 있다.

한국의 칩과 쉽은 ‘잊혔던 미국인’의 감정을 일깨운다. 삼성전자(005930)가 텍사스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SK하이닉스(000660)도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장을 건설한다. 한화(000880)는 델라웨어 강변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HD현대(267250)도 미시시피와 버지니아에 조선소를 가진 헌팅턴 잉걸스와 전략적 협력을 추진 중이다. 잊혔던 지역들이다.

협상의 시간이 다가왔다. 한미 양국이 반도체와 선박 등 전략산업에서 르네상스를 이끄는 파트너십을 맺고 미래 지향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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