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가 한 업체로부터 장기간 출근도 하지 않고 급여를 수령해 ‘황제 근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권 후보자의 배우자도 같은 방식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10일 제기됐다. 야당에선 지역 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권 후보자 부부가 토착기업으로부터 ‘음성적인 후원’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권 후보자 배우자인 배모 씨의 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을 분석한 결과, 배씨는 2021년 7~12월, 2022년 1~6월 두 기간에 걸쳐 안동 소재의 A·B건설사와 자문 계약을 맺고 1980만 원씩 급여를 받았다. 두 회사는 같은 건물의 같은 층에 위치한 데다 소속 임원들이 겹쳐 사실상 동일한 회사로 김 의원은 보고 있다.
문제는 정상적인 근무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배 씨가 국민건강보험·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을 적용받는 정식 근로자 신분임에도 근무 기간 중 장기간 해외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이 확보한 법무부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권 후보자는 2021년 12월 1일부터 이듬해 2월 11일까지 72일 동안 미국에 체류했다. 그는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의 집에 방문해 골프와 여행을 즐기며 일상을 보냈다. 권 후보자가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게시글을 보면 배 씨 역시 미국 일정에 동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배 씨도 2022년 5월 자신의 블로그에 “70일 미국 큰 아들네 일정을 마무리했다”고 글을 올렸다. 배 씨가 두 건설사에 직함만 걸어둔 채 별다른 근무 없이 급여만 타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배 씨의 비정상적인 근무 행태에 대해 국민의힘에서는 ‘대가성 후원금’을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던 권 후보자 부부에게 급여를 빙자해 청탁의 대가를 줬다는 의심이다. 권 후보자 역시 미국 체류 중 안동에 있는 건설사와 서울 종로에 위치한 인쇄소에 근로자로 이름을 올렸고, 인쇄소로부터는 임금을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권 후보자 배우자는 당시 안동 지역 건설사와 자문 계약을 맺고 고용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었던 만큼 형식적인 근로자로 볼 수밖에 없다”며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가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는 것은 정상적인 고용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체류 기간에도 급여가 지급됐다면 이는 단순한 특혜를 넘어 부부가 함께 누린 ‘황제·황후 계약’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며 “성실하게 일하는 국민들과의 형평성에 비춰볼 때 이 부부는 실질적 근로 없이 급여를 챙긴 권력형 특혜의 정점에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권 후보자는 배우자가 본인의 고향 건설사에서 실제로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국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권 후보자에게 직접 입장을 묻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