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가 지난달 말 공개 직후 조사 대상 93개국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넷플릭스 콘텐츠가 공개 첫 주에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오징어 게임3’가 처음이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에서 가장 흥행한 콘텐츠로 꼽힌다. 시즌3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흥행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첫 시즌이 나온 ‘오징어 게임’은 2022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을 휩쓰는 등 그간 주변부에 머물던 K콘텐츠에 대한 인식을 바꾼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의 탄생과 성공은 넷플릭스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넷플릭스는 어느덧 ‘오징어 게임’을 넘어 K콘텐츠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돼버렸다.
사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황동혁 감독은 당초 ‘오징어 게임’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그는 2009년 완성한 ‘오징어 게임’ 대본을 들고 국내 영화 제작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너무 살벌하고 낯설고 난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0년 넘게 서랍 속에 넣어둔 각본을 드라마로 방향을 튼 뒤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으며 지금의 신화를 쓰게 됐다. 황 감독은 지난달 미국 TV 시리즈 시상식인 고섬어워즈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2009년 ‘오징어 게임’ 극본을 거절하셨던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는 말로 넷플릭스에 공을 돌렸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에 빛과 같은 존재였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사에 전체 제작비를 대고 일정 비율의 마진까지 챙겨주면서도 제작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대신 작품의 지적재산권(IP)을 넷플릭스가 가져가는 구조다. 넷플릭스의 사전 제작 방식이 퍼지며 국내 업계의 ‘쪽대본’도 많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만든 콘텐츠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따르는 법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업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 제작비 급등과 국내 콘텐츠의 넷플릭스 종속화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가 제작 단계부터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제작비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됐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시즌1 때 250억 원 정도이던 제작비가 동시 촬영된 시즌2·3에서는 1000억 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2·3의 회당 제작비가 시즌1보다 2.8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발 제작비 폭등으로 최근 2~3년 사이 국내 드라마 제작비가 평균 2배가량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수백억 원대 작품이 쏟아지면서 시청자의 눈높이도 덩달아 높아졌다. 하지만 수익성이 악화된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콘텐츠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극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면서 영화 감독들은 넷플릭스행을 택했고 제작사들도 넷플릭스의 기호에 맞는 작품을 양산하면서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넷플릭스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새 정부는 K컬처 시장 300조 원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화 산업을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머지않아 K콘텐츠 지원 방안이 나올 것이다. 지원 정책에는 무엇보다 ‘포스트 넷플릭스’에 대한 고민이 담겨야 한다.
그동안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거둔 성공에 넷플릭스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의존한 생태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넷플릭스는 이윤을 좇는 글로벌 기업일 뿐이다. 제작비 급증으로 한국 콘텐츠의 강점인 ‘가성비’가 약화되면서 넷플릭스는 한국보다 제작비가 저렴한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제 넷플릭스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해야 한다. 세제 혜택 등 제작비 지원을 확대하고 K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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