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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칼럼] 임상시험 결과 공개는 의무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

임상 참여자조차 정보 공유 거의 안돼

결과 감춰지면 연구 편향·오류만 반복

공개 법적 근거 만들어 투명성 높여야





난치성 암이나 치료제가 마땅히 없는 희귀질환자들에게 임상시험은 단순한 연구 참여를 넘어 마지막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임상시험 참여자들은 자신이 기여한 연구의 결과조차 알지 못한다. 임상시험은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 기술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핵심 과정이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의료 인프라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임상시험 수준이 높은데도 임상시험 정보와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문화는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그간 정부의 임상시험 정책은 주로 신약 개발과 산업적 지원에 집중돼 정작 국민과 연구 참여자들에 대한 배려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는 미흡하다.

인간 대상 의학 연구의 윤리적 기준을 담은 헬싱키 선언은 임상시험 연구자가 연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그 주요 결론을 전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헬싱키 선언은 참여자를 단순한 실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동등한 협력자로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결과 공유를 핵심 윤리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임상시험 결과 공개가 윤리적 권고를 넘어 구체적 법과 제도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2007년 식품의약국(FDA) 개정법에 따라 임상시험 종료 후 1년 이내에 결과를 등록하고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유럽의약품청(EMA)도 2016년부터 임상시험 데이터 투명성 정책을 시행해 승인된 임상시험의 상세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했으며 최근에는 이 정책의 적용 대상을 부정적 심사 결과나 자진 철회된 신청까지 확대했다. 영국은 더 나아가 연구 참여자에게 결과를 적시에 제공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과했다. 이러한 국제적 사례들은 연구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참여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흐름이 이미 세계적 표준으로 정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임상시험 정보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이 2010년부터 임상연구등록서비스를 운영해 현재 약 1만 건이 넘는 임상연구가 등록돼 있지만 등록 의무가 부과된 정부 지원 과제를 제외하면 등록이 저조하다. 특히 인허가를 목적으로 하는 임상시험 상당수가 등록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를 강제할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다. 인허가 목적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정보가 공개되고 있으나 그 내용이 제목과 신청자·기관명 등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 그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임상시험의 결과가 거의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과 공개가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지 않아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는 경우 그 결과 확인이 어렵다. 연구계와 산업계는 상업적 기밀을 이유로 결과 공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정부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익적 임상시험의 경우 통상진료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하며 결과 공개를 권고하고 있으나 법적 의무는 아니다.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와 결과가 공개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공익의 실현이다. 임상시험에는 다양한 공적 자원이 활용될 뿐 아니라 환자들은 본인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연구에 참여한다. 따라서 사회와 연구 참여자들에게 결과를 알리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이자 도리다. 다음으로는 연구의 투명성이다. 상당수의 임상시험이 그 결과가 학술지에 실리지 않거나 일부만 선택적으로 공개되거나 왜곡 발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결과가 감춰지면 연구의 편향과 오류가 반복되고 잘못된 근거에 기반한 진료와 정책을 낳는다. 심각한 경우 공중 보건에 위해를 끼칠 수도 있다. 아울러 결과 공유는 의학의 발전을 촉진한다. 다양한 연구자가 동일 데이터를 검증하거나 새로운 분석을 시도할 수 있으며 이는 치료 효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실패한 임상시험 결과조차 귀중한 과학적 자산이다. 이 데이터는 향후 연구의 설계와 의사 결정에 활용돼 동일한 실수와 불필요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도록 한다.

임상시험 투명성은 보편적 윤리 원칙이다. 우리 정부도 임상시험 등록과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실효성 있게 집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신뢰를 지키고 한국이 임상시험 강국으로 도약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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