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 심장’인 성남시가 최근 발칵 뒤집혔다.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지난달 시작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중독예방콘텐츠 제작 공모전’이 발단이 됐다. 공모 주제로 선정한 4대 중독 예방에는 알코올, 약물, 도박 외에도 인터넷게임이 명시됐기 때문이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남시는 판교를 중심으로 게임사가 몰려 있는 한국의 게임 메카와 같은 곳”이라며 “이러한 곳에서도 게임을 질병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짓밟힌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게임이 신음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 격화로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낙인을 찍으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과학적 근거가 명확치 않은 상황에서 규제의 굴레에 혁신이 위축되고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며 글로벌 4위 게임 강국인 한국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게임은 1분기 15억 8187만 달러(약 2조 1636억 원)의 수출액을 올리며 음악·출판·영화 등 11개 분야를 포함한 국내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51.1%)을 차지했다. 연 수출액이 10조 원이 넘는 알짜 산업이 정책적 지원은커녕 적대시되는 상황이다.
실제 서울경제신문이 집계한 전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60곳 가운데 홈페이지를 운영 중인 55곳 중 32곳이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했다. 이들 지원센터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는다. 복지부도 마찬가지로 홈페이지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운영 및 현황’ 페이지에 센터의 지원 대상으로 ‘알코올 및 기타 중독(마약, 인터넷게임, 도박)에 문제가 있는 자’를 명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인터넷협단체는 복지부가 게임을 중독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에 반발해 시정을 요청하거나 질의서를 보냈다. 게임인재단·한국게임이용자협회·한국게임정책학회·한국인터넷기업협회·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한국게임개발자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게임·인터넷협단체는 지난달 20일 복지부에 ‘게임 중독’ 표현과 관련해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 복지부는 이달 9일 게임·인터넷협단체 질의에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추진 중인 지역사회 중독 관련 교육·홍보 사업은 지역 특성에 따라 실시하는 특화 사업”이라고 답했지만 부처 홈페이지에 여전히 인터넷 게임을 중독으로 표현한 상태다.
복지부가 게임 이용 장애를 치료 대상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에 게임 업계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 5차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아동·청소년 924명, 성인 701명을 5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상 ‘12개월 이상 삶의 통제력 상실, 부정적 영향 지속’이 나타난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연구진은 게임 시간만으로 문제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아동·청소년과 성인의 게임 이용 시간과 이용 게임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예원 이화여대 교수가 올해 4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게임 이용 장애를 자국 질병 분류 체계에 공식 반영한 국가는 아직 없다.
질병코드 도입에 따라 게임이 병이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사회 경제적 손실도 전망된다. 정부의 2024 게임 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게임 산업 매출은 22조 9642억 원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어 4위다. 같은 기간 게임 산업 수출액은 83억 9400만 달러(약 10조 9576억 원)를 달성했다. 국내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악화하며 문화 이용과 제작 활동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콘텐츠진흥원이 2022년 발간한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에 따르면 게임 산업의 규모를 20조 원으로 가정하면 질병코드 도입 시 2년간 게임 산업이 8조 8000억 원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일자리는 8만 39개가 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게임에 대해 문화와 기술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콘텐츠 산업이라는 관점을 확립하고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액공제 등 실질적인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임 산업 세액공제는 현재 입법 논의 중이다. 세액공제가 적용되면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콘진원의 ‘게임산업 조세 지원제도 개선연구’에 따르면 세액공제에 의한 투자 증가 규모는 5년간 총 1조 5993억 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일자리는 1만 5513개가 생길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정책 수립 및 집행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게임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새로운 게임 산업 전담 조직을 설립하고 게임 심의는 민간 자율에 맡길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아울러 중소형·인디 게임 개발사를 적극 육성하고 선택적 셧다운제(게임시간 선택) 등 규제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신진 홍익대 게임학과 교수는 “정부가 게임 지원 사업의 규모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며 “인디 개발사의 전시 지원뿐만 아니라 스케일업도 지속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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