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금융 권역별로 분산돼 있던 감독 기구를 통합해 1999년 1월 금융감독원을 출범시켰다. 2008년 금융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금융감독 체계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동시에 담당하는 금융위와 금융감독 집행을 담당하는 금감원으로 이원화됐다.
최근 언론 보도 등을 보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의 분리와 함께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떼어 내 가칭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 경험과 현행 체계에 대한 반성이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의 분리는 소비자의 권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을 분리하자는 주장의 배경으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의 상충성이 제시된다. 그러나 국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FSB) 조사 결과 대다수 국가에서는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가 상충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라고 답변했다. 건전성 감독이 금융기관의 파산 또는 지급 불능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는 금융 산업의 안정성과 시장 신뢰를 강화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두 기능은 오히려 선순환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금감원 내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을 별도로 떼어내는 것은 간단하지 않고 분리하더라도 조직 이원화에 따른 책임 분산과 기구 분리의 비효율을 피할 수 없다. 금융권과 학계도 금감원 분리가 소비자 보호 강화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감독의 비효율성과 책임 분산을 초래해 소비자 권익을 저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외 사례는 감독 기구 분리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올 6월 영국 상원이 발간한 조사 보고서는 영업 행위 감독 및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금융행위감독청(FCA)과 건전성 감독을 담당하는 건전성감독청(PRA)으로 나눠진 영국의 감독 체계로 인해 중복 규제와 감독 기구 간 경쟁적 감독 영역 확장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규제 준수 비용이 증가하고 금융 산업의 성장 저해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2011년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을 신설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했으나 과도한 규제와 조직의 비효율성 등의 사유로 기구 존치 여부가 불확실하다. 감독 기구 분리는 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을 시사한다.
소비자 보호 강화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과제다. 중요한 것은 기구 형태가 아니라 금융소비자 보호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감독 권한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감독 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그 성과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정책 공약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의 기능 및 독립성 강화, 편면적 구속력 도입, 그리고 금융소비자 보호 평가위원회 신설 등이 제시된 것도 이와 같은 배경이다.
새로운 금융감독 체계 구축은 금융소비자와 금융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큰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중립적이고 투명한 절차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소비자 보호를 위한 해법이 모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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