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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차가운 법을 넘어 따스한 법으로

■ 작가

범법자 처벌만으론 상처 치유 안돼

피해자·가해자·공동체 등 함께 모여

관계 복원하는 회복적 정의 이뤄야





검찰개혁은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였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피해자를 위한 정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찾기 위한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진다. 정의로운 처벌도 중요하지만 처벌 이후의 삶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법이 단지 잘못한 자에게 처벌을 내리는 차가움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회복의 따스함을 지닐 수는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박주영 판사의 ‘어떤 양형 이유’를 읽게 되었다. 법원은 슬프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는 말, 눈물 그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온 세상이 울고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아파하는 사람들끼리 간신히 서로 보호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넘어, 강자와 약자의 경계선을 치워버리고 모두가 서로를 돕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처벌하는 정의를 넘어선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궁극적인 길임을 믿는다.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가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관계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처벌만 내리고 범법자만 가두면, 피해자는 방 안에서, 가해자는 감옥 안에서 각각 고립되고 만다. 공동체가 나서서 피해자의 치유를 돕고,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더 나은 삶을 향한 길을 도와야 한다. 처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 상처를 회복하고 더 나은 쪽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 회복적 정의의 출발이다. ‘누가 잘못했는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다쳤고, 그 상처는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 회복적 정의의 문제의식이다.



회복하는 정의는 법정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심 어린 대화 속에서 시작될 수 있다. 다니엘 시리드가 이끄는 회복 프로그램은 가해자들이 피해자 중심의 회복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는 결코 용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일회적으로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심어린 책임을 묻는다. 정의는 처벌로 끝나지 않는다. 정의는 누군가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 고통을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

브라질의 12세 소녀가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를 낳다가 뇌출혈로 죽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아이가 도움을 청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브라질에서 낙태죄의 처벌이 성폭행 가해자의 처벌보다 무거울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폭행으로 임신했음을 알면서도 병원 한 번 가지 못한 열두 살 소녀, 매일 아프고 힘들고 두려웠을 그 소녀를 위해 필요한 정의는 무엇일까. 정의와 사랑과 보살핌에 굶주린 수많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분노하고 보복하고 처벌하는 정의를 넘어, 회복하고 치유하고 보살피는 정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한 걸음을 시작할 때다.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처벌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사랑으로 품었는가’가 중요하기에. 고통받는 순간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은 차가운 법전의 얼굴이 아니라 따스한 사람의 얼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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