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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서 발돌린 구윤철, '빈손 귀국' 위성락…왜[Pick코노미]

美, ‘2+2 통상 협의’ 돌연 취소

한미 간 '2+2 통상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2+2 통상 협상’이 미국 측의 일방적인 일정 변경으로 무산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출국 한 시간 전 e메일로 면담 연기 통보를 받으면서다. 나흘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협상 파트너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대면 면담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제시한 협상 마감 시한(8월 1일)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 외교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재부는 24일 “2+2 협의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인해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며 “미국 측은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을 다시 개최하자고 제의했고 양측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유례없는 ‘e메일 면담 불발 통보’를 두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 협상에서 최종 딜을 이끌어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기는 했지만 만남 자체가 무산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위 실장은 서면 브리핑에서 “루비오 장관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미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인사들과 현안을 논의했고 루비오 장관과도 유선 협의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특유의 ‘일방통행 협상’이 본격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올 4월 이후 일본과 고위급 협상을 여덟 차례 이어간 끝에 22일 무역 합의를 이끌어냈다. 일본을 상대로 “버릇이 없다(spoiled)”는 거친 용어를 쏟아내기도 했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어쨌든 우리 정부가 쫓기는 처지에 몰리게 됐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측 협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 행정부가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침착하고 정교한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미 간 '2+2 통상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4일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와 협상은 고차방정식…"매드맨 전술에 휘말려선 안돼"


미국이 일명 ‘2+2 협상’을 돌연 취소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협상 전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및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5일(현지 시간) 만나 관세 등 통상 안건을 협상할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8월 1일 상호관세 유예 종료일까지 ‘노 딜’에 그치더라도 협상이 종료되는 것은 아닐 뿐더러 명백한 귀책사유가 미국에 있는 만큼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구 부총리는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차에 타고 있던 24일 오전 9시께 미국 측으로부터 협상 취소를 e메일로 통보 받았다. 통상 실무자간에는 개인 전화번호를 서로 알만큼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데 e메일로 긴급 일정을 통보한 것이다. 미국 측은 “베선트 재무부 장관의 일정이 겹쳤다(schedule conflict)”고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외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베선트 장관에게 25일로 예정된 스코틀랜드 방문에 동행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 구체적 이유는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구 부총리는 공항 도착 후 20여 분간 귀빈실에 머물며 참모들과 상황을 파악하다가 공항을 떠났다.

주도권 장악 위한 美측의 노림수…8월 1일 '데드라인' 넘길 가능성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한 관계자는 “쌀과 소고기를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측이 일종의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현실적으로 8월 1일 데드라인 전에 한국과 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봐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와 협상에 집중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전략과 별도로 외교·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일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관급 회담을 개최 전날에 e메일로 취소하는 것은 동맹 관계인 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구 부총리와 함께 방미길에 오르려던 기재부 협상단 상당수는 출국 수속까지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역시 나흘간의 방미 기간 중 협상 파트너인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대면 면담을 하지 못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이렇게 촉박하게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한 건 외교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처사로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봐야 한다”며 “미국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한미 간 관세·통상 협상을 미국 주도 하에 미국의 타임라인에 따라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고 분석했다.

장기전 가더라도 협상 기회 있어…"EU 등 결과 보고 대응" 지적도


정부는 일단 사태 수습에 주력하고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23일 미국 측이 2+2 협상을 취소한 것과 관련해 “베선트 장관의 급한 사정 때문이지 한국과 협상에 다른 함의(implication)가 있지는 않다”고 해명했다. 위 실장과 루비오 장관간 면담도 “긴급한 일정이 생겨 유선 협의로 대체했다”고 대통령실이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위 실장이 21일 약속된 면담을 위해 백악관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급한 일정으로 루비오 장관을 호출해 이튿날 유선으로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여 본부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을 만나 무역 협상을 예정대로 벌일 계획이다.

다만 다음번 2+2 협상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않으면서 한미 통상 협상은 8월 1일 데드라인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베선트 장관은 28~29일 스웨덴에서 중국과 협상을 앞두고 있어 물리적으로 한국과의 단독 협상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협상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EU와 관세 협상이 먼저 타결이 되는 걸 지켜보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큰 나라로부터 많이 얻어내면 우리로부터 얻어내야 할 게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재계는 '1000억弗+α' 투자 보따리 준비
정부, 10대 그룹 1대1로 접촉
가용가능 대미 투자금액 취합
日처럼 투자펀드 조성도 검토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국내 기업들과 1000억 달러(약 137조 원) 이상의 현지 투자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 통상 대표단은 당초 25일(현지 시간)로 예정됐던 한미 ‘2+2 고위급 관세 협상’에서 이 같은 내용의 대미 투자 계획을 미국 정부 측에 제안할 예정이었다. 앞서 한국과 산업·수출 규모가 유사한 일본은 상호관세 및 자동차 품목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약 757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바 있다.

한국에도 이 같은 투자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관세 협상에 앞서 삼성과 SK·현대차·LG·롯데·포스코·한화·HD현대 등 10대 그룹과 접촉해 가용한 현지 투자 금액을 취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기업들이 약속한 투자 금액은 1000억 달러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1000억 달러+알파(α)’는 일본이 약속한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작지만 일본의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2배 더 큰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10대 기업들을 1대1로 직접 접촉해 투자 규모를 물어본 것으로 안다”며 “일본보다 금액이 적더라도 조선 산업 협력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심 있는 패키지를 마련하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 조달 자금까지 더해질 경우 제안 금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정부는 일본처럼 투자 펀드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단 미국에 투자할 의사가 있는 기업들의 계획을 모아 취합하고 액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우리도 실무선에서 (펀드 조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출입은행·산업은행·무역보험공사·한국투자공사(KIC)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우리나라가 일본과 유사한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은 자동차를 포함한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협상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수천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액으로 4000억 달러(약 548조 원)를 제안했다고 한 소식통이 전했다. 다른 소식통은 일본이 보잉 항공기와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구매한 것처럼 우리 측에도 추가 구매 약속을 무역 합의에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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