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BS 방송이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인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를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날리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콜베어는 21일(현지시간) 방송 오프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쇼 폐지를 축하한 사실을 언급하며 "어떻게 감히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대통령님?"이라며 “재능 없는 사람이 이런 풍자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응수했다.
앞서 트럼프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콜베어가 해고돼서 기쁘다. 그의 재능은 시청률보다도 못했다”고 비아냥댔다.
이에 콜베어는 방송에서 카메라를 정면에서 응시한 채 “엿이나 드세요(Go f*** yourself)”라고 외쳤다. 욕설은 방송상 ‘삐’ 소리로 처리됐지만 관객들은 환호하며 “스티븐! 스티븐!”을 연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지미 키멜(ABC 지미 키멜 라이브 진행자)이 다음 해고 대상이라고 들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 콜베어는 “아니, 아니, 절대 아니다. 키멜, 내가 순교자다. 이 십자가에는 한 명의 자리만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환상적”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그는 “'캔슬 문화'는 너무 도를 넘었다. 주말 동안 그들이 우리 쇼를 폐지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나를 살려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10개월 동안 나는 권력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할 수 있고, 트럼프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다”며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다. 대통령직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다. 그게 전부다”라고 선언했다.
콜베어는 지난 10년간 ‘더 레이트 쇼’를 이끌며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보수 정치인을 유쾌하게 풍자해온 인물로, 이 쇼를 이끌며 미국 내 영향력 있는 토크쇼 진행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내년 5월 방송을 끝으로 후속 진행자 없이 폐지될 예정이다.
이번 폐지를 두고 정치적 압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CBS의 모회사 파라마운트는 현재 스카이댄스 미디어와 84억 달러(약 11조7000억 원) 규모의 합병을 추진 중이고, 합병 성사를 위해서는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이 필요하다. 즉, 인허가권을 쥔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해석이다.
앞서 CBS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의 CBS 인터뷰가 편파적이었다며 소송을 제기한 트럼프에 1600만 달러(약 223억 원)를 쥐어주기로 하며 사건을 마무리한 바 있다. 콜베어는 이달 14일 방송에서 이를 언급하며 '거액의 뇌물'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은 "CBS의 모회사가 트럼프에게 1600만 달러를 지불한 뒤 콜베어의 토크쇼까지 취소했다.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며 의회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BS는 이에 대해 “심야 방송이 직면한 어려운 재정적 환경에 따른 결정일 뿐, 모회사의 합병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중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23일 뉴욕 맨해튼의 CBS 스튜디오 앞에서는 “콜베어를 살려라(Save Colbert)”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에드 설리번 극장에서 출발해 타임스퀘어 파라마운트 본사까지 행진했고, 25만 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서 10박스를 회사 측에 전달했다.
이 청원은 진보 성향 시민단체 ‘진보변화캠페인위원회(PCCC)’가 주도했다. 서명자 명단에는 민주당 하원의원 로 카나, 테드 리우를 비롯해 Veep 총괄 프로듀서 데이비드 맨델, 코미디언 크리스텐 샤알, 배우 프랜시스 피셔 등 다수의 정치인과 유명인들이 포함됐다.
PCCC 공동설립자 아담 그린은 “이건 단순히 한 프로그램이나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백악관에 선제적으로 굴복하고 순응하는 각종 기관들의 흐름이 문제”라며 “콜베어 같은 비판적 목소리가 침묵당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독재와 권위주의로 나아가는 또 한 걸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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